[박태균 기자의 푸드&메드] 석면 피해 걱정하며 담배 피우시나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06면

베이비 파우더로부터 촉발된 석면 파동이 한반도를 거의 집어삼킬 태세다. 화장품업계가 초토화됐다. 9일엔 1222개 의약품이 판매금지·회수 조치됐다. ‘내일은 또 무엇이…’ 하는 우려와 탄식이 터져나온다.

석면 파동이 ‘A급 태풍’으로 변한 데는 두가지 동력이 작용했다. 첫째, 유아용 제품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2000년 5월 미국에서 유사한 사고가 있었다. 어린이용 크레용에서 석면이 나온 것이 인화성을 높였다. 둘째, 석면이 국제암연구소(IARC)가 정한 1그룹 발암물질이라는 사실이 대중의 공포를 키웠다.

석면이 우리 건강에 발길질을 하는 ‘악당’이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호흡기를 통해 들이마시면 석면폐·악성 중피 종·폐암 등이 유발된다는 것은 실증됐다. 그러나 소량의 석면에 한 번만 노출돼도 10∼30년 뒤 암에 걸린다고 여긴다면 석면 자체보다 스트레스에 의한 건강상 피해가 더 클 것이다. 미국 보건부의 석면에 대한 ‘팩트 시트’엔 “석면은 자연계에서 쉽게 발견된다. 거의 모든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석면에 노출 된다. 석면을 고농도로 장기간 마셔온 사람에게만 건강에 해를 미친다”고 기술돼 있다. 직업적으로 매일 석면을 들이마셨을 때 건강상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식약청이 석면이 함유된 약을 판매 금지 하면서 석면에 대한 혐오는 극에 달한 느낌 이다. 고혈압·당뇨병·고지혈증 치료제 등 꾸준히 장복해야 하는 약까지 기피하는 환자가 적지 않다고 한다. 이는 분명 정상이 아니다. 석면이 미량 함유된 약을 복용했을 때의 건강상손실이 1이라면 혈압·혈당·혈중 콜레스테롤을 조절하지 못하고 이에 덧붙여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까지 올라가는 손실은 수억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우리가 석면에 지나치리만큼 예민한 반응을 보이게 된 원인 중 하나는 ‘석면=1그룹 발암물질’이란 등식이다. 1그룹 발암물질의 의미를 바로 아는 것이 평상심을 되찾는 데 도움이 될 듯하다. IARC의 1그룹 발암물질은 사람에게 암을 일으키는 것이 실험적으로 증명된 것들이다.

그러나 1그룹이라 하더라도 양이 적고 지속적으로 노출되지 않는다면 암을 일으키지 못한다. 1그룹 발암물질 안에 태양의 자외선, 갱년기 증상을 개선하기 위해 복용하는 여성호르몬제, 흡연과 간접흡연, 병원에서 흔히 받는 X선 검사, PVC를 만드는 데 쓰이는 염화비닐 등이 포함된 것을 안다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석면과 같은 잣대로 다른 1그룹을 평가한다면 외출을 삼가고 X선 검사를 기피하며 담배를 절대 피우지 말아야 맞다.

특히 석면 파동에 분개하면서 어린 자녀 옆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난센스다. 담배는 석면보다 더 확실한 폐암 유발물질이기 때문이다. 석면에 노출된 사람이 흡연하면 폐암 발생 위험이 50∼84배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마지막 강의(랜디 포시 저)라는 책엔 “공사장 착암기 소리가 태아에게 해를 끼칠까 봐 염려해 항의 시위를 하는 여자가 담배를 들고 있었다. 아이를 걱정한다면 담배를 끊는 게 더 효과적이었을 것”이란 대목이 나온다.

끝으로 우리 사회가 석면 파동을 슬기롭게 극복하려면 석면의 허용 기준이 빨리 정해져야 한다. 그래야 관리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21세기 산업사회를 사는 이상 ‘무조건 불검출’은 이상이지 현실적 허용 기준이 될 수는 없다.

박태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