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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동생, 동생 하더니 곧 “여자로 보인다” 유혹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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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장자연 리스트 파문이 계속 되고 있는 가운데, 젊은 여성 연기자 지망생 두 명이 복마전 같은 국내 연예계의 현실을 털어놨다. 중앙SUNDAY가 이들을 직접 만나 그간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은 후 겪은 실망과 좌절, 희망을 취재했다. 다음은 중앙SUNDAY 전문.

“나는 힘없는 신인입니다…술집 접대부와 같은 일을 하고 수없이 술 접대와 잠자리를 강요받아야 했습니다…(이젠)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지난달 7일 자살로 스물아홉 짧은 생을 마감한 연기자 장자연씨가 남긴 친필 문서의 일부다. 한국 연예계의 부끄러운 단면을 보여 주는 내용이다. 물론 연예계나 기획사들이 모두 장씨가 속했던 곳과 같지는 않을 테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이다.
요즘 대한민국에서 스타가 되기를 꿈꾸는 연예인 지망생은 2만여 명으로 추산된다. 10명 안팎의 배우를 선발하는 웬만한 오디션에는 1000~1500명이 장사진을 친다. 이들에게 장씨의 비극은 남 일처럼 여겨지지 않는다. 적지 않은 신인 연예인이 한두 번쯤은 스폰서나 출세를 미끼로 한 성적 유혹의 시험대에 오른다고 한다. 그런 길을 마다하고 느리더라도 정도를 가겠다는 연기자 지망생 두 명을 중앙SUNDAY가 만났다. 두 사람은 각각 중학생 때 미국과 러시아로 건너가 패션모델과 발레리나로 살다가 귀국해 차세대 연예인의 꿈을 키우고 있다. 두 젊은 연예인 지망생은 국내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은 후 겪은 실망과 좌절, 그리고 희망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기획사 믿었다가 2년간 허송세월

양잉꼬(24)씨는 한때 한국국립발레단의 촉망받는 무용수였다. 중학생 때 러시아 모스크바의 볼쇼이 발레학교에 입학해 외롭고 고단한 유학생활을 견뎌낸 그녀는 춤출 때 행복했다. 2002년 졸업 후 국립발레단 무용수가 돼 ‘백조의 호수’ ‘돈키호테’ 등 6편을 공연했다. 2005년 말 ‘호두까기 인형’을 공연하다 왼쪽 발목 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을 당했다. 6개월간 재활 치료를 받았지만 상태가 호전되지 않았다. 무용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양씨는 며칠간 식음을 전폐했다. 차츰 발레를 아는 친구들과도 멀어졌다. 이후 그녀는 꿈을 ‘신인 연기자 지망생’으로 바꿨다.

“볼쇼이 발레학교에서 발레를 위한 연기 수업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 참 신나 했던 기억이 났고 연예계를 잘 아는 분들이 조언해 줘 용기를 내 연기자가 되기로 했다.”

출발은 좋았다. 연기학원에 다니던 2006년 가을 진주시가 개최한 ‘차세대 한류 스타’ 연기자 선발대회에서 우정상을 탔다. 그러자 연예기획사 S사에서 전속 계약을 제안했다. 유명 작가가 소속된 S사는 방송국 드라마에 소속 배우들을 출연시키는 힘이 있었다. 방송·영화 출연 기회를 잡기 위해 2007년 2월 계약했다.

막상 계약을 했지만 방송 진출은 ‘그림의 떡’이었다. 6개월 만에 소속사를 나와 혼자 지냈다. 이때 지인의 소개로 몇 군데 기획사 대표들을 만났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처음엔 ‘동생, 동생’ 하던 사람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여자로 보인다. 나랑 사귀면 키워 주겠다’며 연인관계를 요구했다. 모 기획사 대표와 유명 스타의 관계를 거론하며 그런 사이가 되자고 유혹했다. 연예계가 그런 데라고 듣기는 했으나 막상 직접 경험하게 되니 참담했다.”

그녀는 당시 상황에 대해 “설사 기획사 대표의 연인이 된다 해도 길어야 2~3년일 것이고 끝나면 또 다른 사람과 그런 관계가 돼야 하는데 그런 쳇바퀴에서 살고 싶지 않았다. 반짝 스타가 아니라 평생 연기자가 되는 게 목적이었고 나를 믿어 주는 부모님이 있어서 유혹을 이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양씨는 다시 기획사를 찾았다. 그러나 새 기획사 대표는 전속 계약금 500만원도 주지 않고 방송국이나 영화사에 들어가는 홍보 자료조차 만들지 않았다. 그러면서 “연예인은 한순간에 되는 게 아니다. 5~6년 안 기다린 사람 없다”고 기다리라는 말만 할 뿐이었다. 차량이나 의상비·미용비·운동비 등은 물론이고 매니저 월급도 신인들에게 부담시켰다. 처음 10명이던 소속 연기자가 하나 둘씩 빠져나가고 지금은 1명만 남았다. 참다 못한 양씨가 계약 해지를 요구했지만 차일피일 미루는 바람에 오디션 기회도 많이 놓쳤다. 최근에는 자신을 포함한 신인 연기자들의 계약서를 다른 사람에게 팔아 넘긴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신인 연기자의 전속 계약서는 이른바 ‘노예계약서’로 불린다. 수익 배분 구조가 기획사가 대부분을 가져가게 돼 있다. 계약을 어기면 계약금의 4~5배를 물어야 한다. 양씨는 “기획사와 싸우다 지칠 대로 지쳤던 장자연씨의 심정이 이해가 가더라”고 했다.

지금까지 2년여 동안 양씨가 찍은 것은 모 가수의 뮤직비디오가 전부다. 방송국 드라마나 영화에는 출연하지 못했다. 실제로 난립한 군소 기획사 가운데 상당수는 신인들을 갈취하는 것으로 회사를 운영하는 게 현실이라고 한다.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에 등록된 연예기획사는 63개. 미등록 회사는 100개가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문화관광부는 이들 미등록 기획사의 폐단이 많다고 보고 정비 방안을 마련 중이다.

“연극 여주인공으로 발탁돼”

중학교 3학년 때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 간 한예나(27)씨. 현지에서 대학 때 패션모델로 활동한 그녀는 졸업 후 미국 배우조합에 정식 등록한 배우로 3년간 활동했다. 인기 TV드라마 ‘프렌즈’ ‘닙/턱’, 영화 ‘오스틴파워’와 독립영화 등 20여 편에 단역으로 출연했다. 2003년께 2~3개월에 걸친 오디션 끝에 영화 ‘게이샤의 추억’ 여주인공 최종 오디션까지 가기도 했다. 막판에 유명 배우인 장쯔이와 궁리 등 중국 배우가 캐스팅되면서 출연 기회를 잡지 못했다.

미국 연예 시장에서 동양인의 한계를 절감한 그녀는 한국영화 붐이 일던 2004년 혼자 귀국했다. 한씨는 “여배우로서 동양인은 바보나 창녀, 싸우는 역할 등 단역이 대부분이었다. 영어 말고 한국말도 유창한 만큼 한국에서 깊이 있는 연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귀국한 한씨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연예기획사의 폐단이었다. 첫 번째 기획사는 출연시켜 줄 능력이 안 되는 곳이었다고 한다. 출연 섭외는커녕 한씨더러 “아는 PD를 소개시켜 달라”고 할 정도였다. 두 번째 기획사에서 양씨를 만났다. 한씨는 연기자 양성보다 돈 빼돌리기에 급급한 기획사 대표를 보고 기겁을 했다. 뒤도 안 돌아보고 나왔다.

한씨는 그동안 ‘미녀는 괴로워’ 등 7편의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하고 화장품과 아파트 광고 등에 출연했다.

그녀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기획사의 강요로 술자리 접대에 나간 적은 없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배우 되기가 너무 힘들다. 오디션 위주인 미국과 달리 인맥에 의한 소개로 캐스팅이 이뤄진다. 기획사의 횡포가 심하고 여배우를 성적 대상으로 여기는 풍토가 있다. 개인적으로 얼굴을 알리기 위해 술자리에 나갈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선은 지켜야 한다. 선을 넘는다고 금세 스타가 된다고 믿지 않는다. (배우 생활을) 굴욕적으로 하고 싶지 않다. 나에겐 목표가 있다. 진정한 연기자가 되는 과정에 샛길·지름길로 빠지지 않고 정도를 가겠다.”

한씨는 2007년 말 연극 무대로 발길을 돌렸다. 극단 ‘수’에 들어가 연습실 청소부터 했다.

“당장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었다. 연기의 기초부터, 밑바닥부터 배우자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는 많았지만 연극단원 중에서 제일 막내라 두 시간 일찍 나와 청소도 하고 심부름도 하며 나를 단련했다.”

이듬해 초 연극 ‘신방자전’에 단역으로 출연했던 그녀는 운이 좋았던지 춘향 역에 더블 캐스팅된 여배우 중 한 명이 중도 하차하면서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러나 제작사가 중간에 투자를 중단하는 바람에 첫 회가 마지막 공연이 됐다. 다음 작품 ‘하녀들’도 3일밖에 무대에 올리지 못했다. 기회는 다시 찾아왔다. 그녀는 오디션을 통해 연극 ‘연애특강’의 주연 중 한 명으로 발탁됐다. 지난주 대학로 인아소극장에서 막이 오른 이 연극은 3개월 동안 계속된다. 한씨는 연하남의 구애를 받는 선머슴 여성 역을 맡아 열연 중이다. ‘연애특강’ 연출가인 권오성(41)씨는 “예나씨는 외국 생활을 오래했지만 튀지 않고 성품이 착실하다”며 “배우로서 성공할 기본 자질을 갖췄기 때문에 오래지 않아 꿈을 이룰 것”이라고 말했다. 권씨는 “연극 무대에 섰던 여배우들이 연예계로 나가지만 90% 이상이 견디지 못하고 다시 돌아온다”며 “연기자가 아니라 상품이나 장난감을 사듯 하는 풍토에 질려서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꿈을 꿀 수 있어 행복하다”

두 사람은 나름 연기의 마력에 끌린 동기가 있다.
“발레를 못 하게 됐을 때 실의에 빠졌다. 탤런트 도지원·박소현씨도 발레리나였다가 부상 때문에 춤을 포기하고 연기자로 변신했다. 며칠 전 서랍 속에 쟁여 뒀던 토슈즈를 4년 만에 꺼냈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발레를 대신하는 게 나에겐 연기다. 그걸로 인정도 받고 싶고 돈도 벌고 싶다. 색깔 있는 연기자가 되고 싶다.”(양씨)

“LA에서 그리스 신화를 각색한 영화(글로리 박스)를 찍은 적이 있다. 유럽의 여러 영화제에 초청돼 상영됐는데 관객이 감동해 눈물을 흘리는 걸 보고 큰 희열을 느꼈다. 거기에 중독돼 8년을 걸어왔다. 그 후로는 그런 희열을 느껴본 적이 별로 없지만 다시 경험하고 싶다. 연기는 항상 완성품이 없고 다음 작품에서 새롭게 도전하는 게 좋다.”(한씨)

양씨와 한씨는 외국 생활을 오래 하고 돌아와 신인 배우에 도전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신인 배우들의 등용문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공개 오디션을 늘려야 한다는 생각도 같다. 대형 기획사의 들러리를 서 주는 형식적 오디션이 아니라 자유 경쟁으로 실력 있는 신인을 선발하기 위한 오디션 시스템을 정착해야 한다는 것이다. 양씨는 “오디션에 가도 기획사별로 다 선발 대상자가 정해져 있다는 얘기가 많다”며 “더 많은 신인에게 다양한 기회를 줘야 물이 썩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씨는 “신인오디션 시스템이 활성화돼야 한다”며 “기획사에 적이 없는 신인들은 인터넷 사이트 등에서 오디션 정보를 얻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치열한 경쟁에서 낙오될 수도 있다는 데서 오는 불안·초조감, 이에 따른 불면증은 연기자 지망생들을 괴롭힌다. 한씨는 “경제위기 이후 영화는 점점 안 찍고 드라마는 스폰서 없으면 나가기 힘들고 오디션도 줄었다”고 말했다. 그녀가 요즘 주문처럼 외우는 말은 ‘욕심 내지 말자. 열의 아홉은 연예계의 유혹에 빠진다. 사람에게 기대지 말자. 항상 실망한다’는 것이라고 한다.

양씨는 “친구들이 연기자가 됐는데 왜 데뷔하지 않느냐고 물을 때 답답하다”며 “이러다 영영 기회가 없는 것 아니냐는 초조감과 불안감으로 잠을 못 이루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불안과 초조를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극복하고 있다. 한씨는 연극 무대를 통해 연기 실력을 쌓고 있다. 양씨는 연극보다 방송 드라마나 영화 진출 쪽을 노리고 일대일 연기 수업을 받고 있다. 서두르지 않되 꾸준히 도전해 기회를 잡겠다는 전략이다. 생활비는 양씨의 경우 어린이 상대 발레 교습을 통해, 한씨는 영어 개인 교습을 해 조달한다. 한씨의 학생은 고소득 전문직 인사가 많다고 한다.

꿈꾸기 때문에 행복하다는 두 사람은 “우리같이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는 신인 배우들이 있음을 꼭 기억해 달라”며 활짝 웃었다. 그들이 풍기는 땀 내음이 향기롭게 다가왔다.

조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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