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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이 망하고 흥하는 게 재수 때문이라고?“환경의 차이지, 사람 자체가 달랐던 건 아니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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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호 10면

만약 다윈의 인생에 비글호 항해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종의 기원』 같은 책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다윈은 1831년부터 4년10개월 동안 비글호를 타고 남미와 여러 섬을 탐험했다. 오늘은 미국 캘리포니아대(LA캠퍼스)의 지리학과 교수인 제러드 다이아몬드가 다윈의 서재를 방문했다. 다이아몬드는 지난 30여 년 동안 남미·아시아·아프리카·호주·뉴기니 등지에서 문명과 환경의 역사를 연구한 뒤 『총, 균, 쇠』를 내놓았다. 다윈이 세계 지도를 펼쳐 놓는다.

장대익 교수가 열어본 다윈의 21세기 서재<5>: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

다윈=자네가 17차례나 탐험했다는 곳이 어디였지? 호주 북쪽의 뉴기니라고 했던가?
다이아몬드=네, 선생님. 20대 후반부터 틈날 때마다 방문한 곳인데요. 거기서 새도 관찰하고 생태도 조사하고 원주민의 삶에 대해서도 연구했지요. 뉴기니는 제2의 고향이에요.

다윈=예전에 자네가 거기서 다시 발견한 ‘노랑머리 바우어새’에 대한 기사를 재미있게 읽었었네. 자넨 취미로 새를 관찰한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전문 조류학자 이상일세. 어쨌든 어떤 뉴기니 원주민이 던지는 질문으로 『총, 균, 쇠』의 첫 장을 열더군.

다이아몬드=1972년 7월 어느 날이었죠. 저와 함께 해변을 거닐던 ‘얄리’라는 뉴기니 청년지도자가 제게 진지하게 따져 묻더군요. “왜 당신네 백인들은 그렇게 많은 화물들을 발전시켜 여기까지 가져왔는데 어째서 우리는 그런 화물들을 만들지 못한 겁니까?”라고요. 그는 문명 또는 민족 간 불평등의 원인에 대해 묻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그 당시 만족스러운 답을 하지 못했죠. 하지만 그가 던진 질문은 지난 30여 년 동안 제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다윈=문명 간 불평등의 원인이라…. 그런데 이런 주제는 어느 분야에서 연구할 수 있지?

다이아몬드=우선 이 물음이 역사학의 주제일 거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대부분의 역사학자는 이런 질문 자체를 던지지 않더라고요. 이해는 됩니다. 그들에게 너무 크거나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질문일 수도 있으니까요. 고심 끝에 제가 직접 나서기로 했습니다. 제가 비록 생리학자로 출발했긴 하지만 생태·언어·진화·지리에 대해서도 공부를 좀 했었거든요. 막상 30년간 학제적인 연구를 해보니 정말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얄리의 질문에 가장 시원찮은 답변은 아마도 “인종 또는 문명 간에 본래적으로 능력에 차이가 있었다”는 것이겠죠. 하지만 제 연구의 결과는 한마디로 “문명 간 또는 민족 간 불평등은 운이 좌우했다”는 것입니다.

다윈=재수가 없어서 망했다는 말인가?

다이아몬드=제가 발견한 불평등의 스토리를 말씀드려 볼게요. 1만3000년 전 ‘비옥한 초승달’이라 불리는 중동 지역에서 인류는 떠돌이 생활을 접고 최초로 보리와 밀 농사를 시작합니다. 9000년 전에는 사냥 대신 사육을 하면서 고기뿐만 아니라 우유·털·가죽 등을 수시로 얻게 됩니다. 가축의 탄생이죠. 그리고 이 가축들에게 쟁기를 달아 생산력을 증가시키면서 식량이 남게 되고 인류의 삶에 획기적인 변화가 찾아옵니다. 가령 잉여식량은 새로운 전문가들을 탄생시켰죠. 금속 기구를 만드는 사람들도 그때 생깁니다. ‘쇠’로는 칼을 만들 수 있기에 아주 중요한 변화였습니다. 이때부터 쇠를 다룰 수 있는 문명이냐 그렇지 않으냐가 흥망성쇠를 결정합니다.

다윈=그럴듯한 스토리요. 하지만 운이 어느 대목에서 작용했단 말이죠?

다이아몬드=우선 지리적 요인을 들 수 있겠죠. 중동에서 농사와 사육이 시작된 것은 전적으로 그때 당시 그곳의 기후 및 토양 조건 때문이었죠. 거기 사람들이 더 똑똑했던 것은 아닙니다. 게다가 곡물 재배와 가축 문화, 그리고 철기 문명은 비옥한 초승달 지역과 위도가 유사한 유럽과 아시아로만 확산되었습니다. 땅과 기후가 핵심이었죠.

다윈=그런 문화가 남북이 아닌 동서로 전달되었다는 얘기군. 그래서 유라시아가 남미나 아프리카의 문명을 능가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총’과 ‘균’은 뭐요?

다이아몬드=16세기에 찬란했던 남미의 잉카 문명이 스페인 군대에 갑작스레 멸망했는데요. 그때 스페인 군대는 말을 탄 채 총을 들고 들어왔습니다. 잉카인들은 어리둥절했죠. 그들은 총뿐만 아니라 말도 보지 못했거든요. 첫 대결에서 7000명의 잉카인들이 학살을 당하지만 스페인 군사는 단 한 명도 사망하지 않았습니다. 압도적인 우위였습니다.

다윈=이런 우열이 근본적으로 지리적 차이 때문에 기인한 거라는 얘기구먼. 좋네. 그런데 난 총, 균, 쇠 중에서 균으로 문명의 불평등을 설명하는 대목이 가장 인상적이었네. 서양인이 남미나 아프리카에 들어갈 때 그들의 병균도 따라 들어갔다는 얘기 아닌가. 홍역이나 천연두가 원주민에게 전염되면서 대재앙이 생겼겠지. 실제로 유럽의 전염병이 아메리카로 넘어간 뒤 원주민 인구의 95%가 사망했다는 통계도 보았네. 자네는 서양인이 달고 간 병균들이 남미와 아프리카 문명에 가장 큰 적이었다는 얘길 하더군. 아주 재미있는 분석이야.

다이아몬드=어떤 이는 “왜 그러면 인디언의 전염병은 유럽인을 몰살시키지 않았느냐”고 반문하더군요. 서양인은 가축을 기르면서 그로부터 기인한 온갖 전염병들에 이미 면역력이 강화되었었죠. 반면 남미와 아프리카에서는 가축화가 아주 미미했고 따라서 전염병에도 취약했습니다.

다윈=대단해. 총, 균, 그리고 쇠로 문명의 불평등을 인과적으로 분석한 자네의 능력에 감복했네. 그리고 무엇보다 자네는 이 책을 통해 역사가 지겨운 사실들의 나열이 아님을, 더 나아가 역사도 훌륭한 과학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네. 문명의 역사를 바라보는 자네의 시각에는 스케일과 디테일이 모두 다 들어있는 것 같아. 나도 비글호를 타고 호주 밑의 태즈메이니아 섬까지 탐험했었는데, 뉴기니를 못 가본 것이 후회가 되네 그려. 여기 지도 좀 보게나. 바로 위인데 말일세.

다이아몬드=다음 여행 때 함께 가시죠. 제가 모시겠습니다. 병균은 빼고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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