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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 칼럼] 패밀리가 떴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09호 34면

떴다는 뜨다의 과거형이다. ‘물에 뜨다’ ‘눈을 뜨다’처럼 쓰인다. 이게 패밀리랑 결합하면 말뜻이 좀 달라진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다’로 바뀐다. ‘패밀리가 떴다=패밀리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다’가 되는 식이다.

요즘 뜨는 패밀리는 둘이다. 국민MC 유재석 패밀리와 전직 대통령 노무현 패밀리다. 두 패밀리의 ‘뜸’은 단연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유 패밀리는 모 방송사의 예능 프로그램의 주인공으로 1년째 이 분야 인기 최고다. 노 패밀리는 다른 모든 뉴스를 물리치고 열흘 넘게 신문·방송의 톱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두 패밀리는 ‘떴다’는 것 외에도 많이 닮았다.

첫째, 핏줄을 나누지 않은 사람들까지 가족이라고 부른다. 유 패밀리는 8명이다. 이효리, 박예진, 윤종신, 김수로, 이천희, 대성, 김종국…. 모두 남남이지만 형님·동생, 누나·언니라 부른다. 유재석과 이효리는 자칭타칭 국민남매로까지 불린다. 노 패밀리도 8명이다. 노건평, 노건호, 연철호, 권양숙은 핏줄로 얽혔다.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박연차(태광실업 회장), 정상문(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이광재(국회의원)도 패밀리다. 노 전 대통령의 형인 노건평씨는 “서로 대통령 패밀리까지는 건드리지 않도록 하자. 우리 쪽 패밀리에는 박연차 회장도 포함시켜 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핏줄 대신 부패로 얽힌 패밀리인 셈이다.

둘째, 등장 인물이 자꾸 늘어난다. 유 패밀리는 매주 한 명씩 게스트가 바뀐다. 새 가족이 매주 한 명씩 늘어나는 셈이다. 노 패밀리도 부패 연루 인물을 계속 늘려왔다. 늘어나는 속도는 노 패밀리가 더 빠르다. 이강철(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박정규(전 청와대 민정수석), 강금원(창신섬유 회장), 안희정(민주당 최고위원)까지 2~3일에 한 명꼴이다. 가족이 얼마나 더 늘어날지 모른다는 것도 두 패밀리의 공통점이다.

셋째, 각본대로 움직인다. 유 패밀리는 방송 중 주고받는 감탄사까지 각본대로라고 한다. 연초 일부 각본이 인터넷에 공개되자 “속았다” “실제상황인 줄 알았다”며 실망한 팬들의 비판이 잇따르기도 했다. 노 패밀리의 각본엔 공식이 있다. 처음엔 ‘안 받았다, 안 줬다’ ‘모른다’로 시작한다. 다음엔 ‘검찰에서 다 밝히겠다’고 한다. 마지막엔 ‘받긴 받았지만(주긴 줬지만), 대가성은 없다’다. 이 각본은 역대 부패 패밀리의 공식과 같다. 하도 많이 들어서 국민 모두가 다음 수순을 외울 정도다.

넷째, 주 무대가 시골 마을이다. 유 패밀리가 매주 마을을 바꿔가면서 전국적으로 활동하는데 비해 노 패밀리는 본거지인 봉하마을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다섯째, 새 유행어를 쏟아낸다. 유 패밀리는 조작 스캔들(유재석), 훅훅(김수로) 등을 유행시켰다. 노 패밀리의 빅 히트작은 ‘연차 수당’이다. 박연차 회장에게 받은 돈을 말하는데 못 받으면 바보, 받으면 감방이란 주석이 달려 있다. ‘600만 달러의 사나이’(박 회장으로부터 노 전 대통령에게 전달된 돈을 30여 년 전 미국 드라마 ‘600만불의 사나이’에 빗댄 말), ‘돈짱’(노사모가 노 전 대통령을 ‘노짱’이라고 부르는 것을 빗댄 말)도 신조어다.

여섯째, 여자들이 권력을 쥐고 있다. 유 패밀리의 짱은 단연 이효리다. 남자들은 눈치보기 바쁘다. 이효리가 잘못하면 통제할 방법이 없다. 기껏 “이효리가 한 일”이라고 둘러댈 뿐이다. 노 패밀리도 비슷하다. 7일 노무현 전 대통령은 100만 달러 건이 불거지자 권 여사에게 퉁쳤다. “저의 집(권양숙 여사)에서 부탁하고 그 돈을 받아 사용한 것”이라고 둘러댔다.

일곱째, 남의 가족 얘긴데도 온 국민이 관심을 가진다. 유 패밀리는 시청률 짱이다. ‘패밀리가 떴다’를 검색하면 구글엔 192만 건의 정보가 나온다. 노 패밀리에 대한 관심도 폭발적이다. 특히 힘 좀 쓴다는 분들의 관심이 높다. 그렇다 보니 국내 언론의 대서특필은 물론이고, 외국 언론들이 앞다퉈 톱 기사로 보도할 정도다.

다른 점도 있다. 유 패밀리는 웃음과 오락을 주지만, 노 패밀리는 고통과 분노를 준다. 한 여당 정치인은 “우리 정치가 조롱감이 되고 있다. 이런 비유와 풍자들이 크게 틀리지 않는다는 게 더 문제”라고 말했다.

뱀 다리 : 두 패밀리를 비교하면서 무척 망설였다. 우리 정치를 지나치게 희화화하는 게 아닌가 걸려서다. 글을 맺으면서 그러나 유 패밀리에 더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됐다. 국민에게 웃음을 주는 유쾌 패밀리와 분노를 주는 불쾌 패밀리를 같이 취급한 듯해서다. ‘패떴’ 제작·출연진에 심심한 사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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