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의 컬처코드 ⑮ 10대는 왜 가수에 열광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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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MBC 예능프로에 나온 이경규의 말이 재미있다. “연령대에 따라 좋아하는 스타가 달라진다. 초등학교 4학년까지는 개그맨, 고등학생 때는 가수를 좋아하다가 실제 이성을 사귈 수 있는 대학생이 되면 배우, 탤런트로 넘어가더라. 내 딸을 보면 안다.” 경험론적 얘기라지만 꽤 설득력있는 분류다. 아무리 아이돌 가수에 열광하는 팬층이 이모, 고모, 삼촌으로 넓어졌다고 해도 10대 소녀만은 못하다. 또 10대 소녀들이 주도하는 팬클럽은 탤런트 보다 가수쪽이 훨씬 많다.

#물론 이는 기획의 산물이다. 아이돌 가수는 있어도 아이돌 배우는 없는 것처럼, 애초부터 10대들을 겨냥한 아이돌 문화 자체가 음악에 뿌리를 두고 있다. 당연히 아이돌 가수는 10대 중·후반~20대 초반이고, 또래인 10대 팬들의 지지로 생존한다. 지금은 엔터테인먼트 산업 자체가, 가수로 시작한 아이돌이 수명을 다하면 드라마·영화·버라이어티 등 다른 영역으로 변신해가는 모델을 쫓고 있다. 어쨌든 핵심은 변함없다. ‘왜 10대들은 다른 어떤 스타보다 가수를 더 좋아하는가’이다.

#비밀은 ‘음악의 육체성’, 특히 ‘댄스음악의 육체성’에 있다. 사춘기의 시작은 대부분 시끄러운 음악을 큰 소리로 듣고, 좋아하는 연예인의 사진을 벽에 도배하는 것이다. 사춘기의 성적 에너지 분출이 ‘시끄러운 음악’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다. 아이돌 가수가 선보이는 댄스음악도 마찬가지다. 가사나 비트, 춤 동작 자체가 성적 에너지의 분출을 담는 육체적인 장르다. 누군가는 그 유해성을 문제삼지만 사실 가사 자체는 큰 의미없다. 몸으로 느껴지고, 몸이 절로 반응하는 게 더 중요하다(극단적인 형태가 춤추기 위해 듣는 클럽음악일 것이다). MP3 같은 음악의 소비방식 또한 육체성을 극대화한다. 주변과 나를 차단하는 MP3는 음악 소리를 마치 내 신체 일부에서 나오는 소리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10대가 아직은 구체적 연인을 갖기 전이라는 점도 중요하다. 실제 이성 교재가 가능해지는 20대가 되면, 현실속 연인에게 바라는 구체적 조건을 구현한 탤런트·배우로 관심이 옮겨간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완벽한 연인의 모습을 보여주며, 실제 그런 사랑을 꿈꾸게 하는 로맨틱 가이들 말이다.

그러나 아직 본격적인 연애가 허용되지 않는 10대에게 아이돌 스타들은 대리연애의 상대인 동시에, 이상화된 자기라는 측면이 강하다. 20대나 성인팬들과 달리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의 성공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것이 그 때문이다. 가수의 인기 순위를 높이기 위해 열심히 음반을 사며, 라이벌 가수의 팬클럽과 적대적 행위도 불사한다. 자신의 좌절을 좋아하는 스타의 성공으로 보상받으려는 심리다.

여기에 현실의 경쟁관계에서는 찾기 힘든, 비경쟁적인 취향공동체로서 팬클럽·팬문화가 있다. 팬들간의 강한 결속감 속에, 아이돌 가수들 역시 팬에게 특별한 지위를 부여한다. ‘동방신기’처럼 팬에게 바치는 연가를 부르는가 하면, 공연장에서 소녀팬들과 1대 1 눈을 맞추며 개인적 관계의 환상을 주기도 한다.

물론 이렇게 복잡하게 말할 것도 없다. 이미 많은 문화연구자들은 10대 소녀들이 열광적 팬덤의 주체가 되는 것을, 사회적 약자로서 10대 소녀라는 위치와 그들을 둘러싼 경쟁적 환경에서 찾았다. 숨막힐 듯한 현실의 탈출구로서의 10대 소녀 팬덤이다.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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