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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동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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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1568년 7월 퇴계 이황 선생은 갓 즉위한 임금 선조에게 소(疏)를 지어 올린다. 국정 경험이 없는 16세의 새 임금에게 ‘정치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에 대해 대학자와 덕 높은 정치인으로서의 경륜을 전달하기 위해서다. 촉한(蜀漢)의 유비가 철없는 아들 유선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사망한 뒤 제갈량이 그 유명한 ‘출사표(出師表)’를 올리던 정경과 흡사하다.

무진육조소(戊辰六條疏)라는 이름의 문장에서 퇴계는 일국의 군왕이 갖춰야 할 덕목과 몸가짐을 여섯 가지로 정리한다. 그중의 한 대목에서 퇴계 선생은 이런 설명을 한다. “같은 소리는 서로 응하며, 같은 기운은 서로를 찾습니다. 물은 습한 곳으로 흐르고, 불은 마른 곳으로 옮겨 갑니다(同聲相應, 同氣相求, 水流濕, 火就燥).”

이는 선생이 『주역(周易)』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사람이나 사물이 서로 같은 유형별로 모이는 성향이 있음을 말함이다. 퇴계는 이로써 임금이 스스로 지혜와 덕을 쌓으면 그 밑에 자연스레 어진 신하들이 모여든다는 점을 깨우치고자 했다.

전국시대의 순우곤이라는 인물은 재치가 뛰어났다. 『전국책(戰國策)』에는 어느 날 그가 제(齊)의 선왕(宣王)에게 현자(賢者) 7명을 천거한 기록이 나온다. 임금이 “현자를 한 명도 얻기 어려운데 어떻게 한꺼번에…?”라며 의구심을 품는다.

순우곤의 대답은 이렇다. “새와 짐승은 비슷한 것들끼리 모입니다. 멧미나리와 도라지를 도랑에서 찾는다면 평생 하나도 못 건집니다. 그러나 산의 북쪽 기슭을 뒤진다면 당장 한 수레 분량을 찾을 수 있습니다.” 역시 같은 사람끼리 모이는 현상을 설명했다.

이런 기록들이 나중에 성어로 정착했다. “사물은 종류별로 모이고, 사람은 무리로 나뉜다(物以類聚, 人以群分)”는 말이다. 사람이 좋게 모이면 그 사회는 융성할 수 있다. 나쁘게 모인다면 패거리와 작당이다.

초록(草綠)은 동색(同色)이요, 가재는 게 편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끼리끼리 모여 그 사회나 구성체를 좀먹는 사람들에게 내놓는 한국 민간의 폄사(貶辭)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단연 화제다. 그러나 전직 국회의장 두 명도 그에 합류했다. 이른바 ‘박연차 리스트’에 걸리는 정치인들이 한둘이 아니다. 무리끼리 한곳에 모이는 성향을 지금의 대한민국 정치판만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는 없다.

품성(品性) 고약한 사람들이 예나 지금이나 정치판을 말아먹고 있다는 생각에 국민의 울분은 깊어 간다. 한국 정치는 이제 거듭나야 한다. 새 봄처럼 새로 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일 때다.

유광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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