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IMF협상단 도착서 타결까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지난달 21일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후 열흘동안 전개된 협상과정을 재정경제원 관계자는 "피를 말리는 초읽기 승부" 였다고 말했다.

해외로부터의 달러 차입이 일절 중단된 가운데 시시각각 다가오는 부도위기와 싸우며 협상을 진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23일 IMF 협의단 1진이 서울에 도착했을 때 남아있는 외환보유고는 10월말보다 1백억달러 줄어든 2백5억달러선. 이 가운데 국제기구 출자금등 손댈 수 없는 돈을 제외한 가용달러는 이미 1백억달러 안팎으로 줄어든 상태였다.

이대로 가면 2주를 넘기기 힘든 절박한 상황. 협상시작은 외견상 '슬로 스타트' 로 보였다.

IMF 협의단은 휴버트 나이스 단장이 도착하지 않은 상태에서 성장.국제수지등 거시경제지표나 부실금융기관 정리등 핵심 요구조건등을 내놓지 않은채 현황파악에 이틀을 보냈다.

한국측도 정확한 외환보유고등 구체적인 자료를 내놓기보다 종금사 외환업무 양도나 콜자금 지원등 급한 불을 끄는데 주력했다.

그러나 26일 나이스 단장이 도착하면서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IMF측이 처음으로 요구조건 '보따리' 를 푼 것은 27일. 내년 한국경제 성장률을 2.5%까지 낮추고 경상수지 적자폭은 국내총생산 (GDP) 의 1%이내, 즉 50억달러이내로 줄여야 한다는 조건이 제시됐다.

재경원측이 IMF가 부실금융기관들의 '처리기준' 을 만들고 있다는 것을 감지한 것도 이날이었다.

뒷얘기지만 IMF측이 한국측의 '버티기' 와 직결된 정확한 외환보유고를 한은조사를 통해 파악한 것도 이무렵으로 알려졌다.

이때를 고비로 협상의 주도권은 IMF측으로 급격히 기울었다.

한국의 외환부도 방어능력이 한계에 도달한 상황에서 재경원측은 내년 성장률을 5.2%로 낮춰잡은 카드를 제시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임창열 부총리가 시간을 벌고 협상력을 키울 수 있는 급전 (急錢) 을 구하기 위해 28일 도쿄 (東京) 로 날아갔지만 일본측의 반응은 냉랭했다.

같은날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이 김영삼 (金泳三) 대통령에게 걸어온 국제전화 역시 한국측의 운신의 폭을 좁혀놓은 것이었다.

발표는 양국 정부가 '긴밀히 협력한다' 는 것이었으나 "여러말 말고 IMF 요구조건을 수용하는게 좋을 것" 이라는 통첩이나 다름없었다.

정부는 이 시점에서 IMF와 협상을 빨리 끝내고 돈을 빨리 받는 길 밖에 없다는 판단을 굳혔다.

정부는 29일로 협상을 끝내면 30일중 임시 국무회의를 열어 협상결과를 수용하고 대국민 발표까지 마칠 예정이었다.

林부총리는 29일의 철야협상 결과를 들고 30일 오전 청와대에 들어가 金대통령으로부터 결심을 받아왔고, 이에따라 양측은 30일 오후부터 마무리작업에 들어갔다.

손병수.고현곤.이상렬 기자

11월21일 정부, IMF에 구제금융 정식요청

11월23일 재경원 IMF 협의단 편성 (단장 姜萬洙 차관) IMF 실무협의단중 1진 도착 (토머스 밸리노 팀장등 3인의 금융.환율팀)

11월24일 본격 협상 착수

11월25일 IMF 협의단 국내금융기관 부실상태 집중조사

11월26일 휴버트 나이스 IMF 실무 협의단 단장 도착

11월27일 林부총리 - 나이스 단장 비공개 협의. '최대한 빨리 협상 마무리와 자금지원' 에 합의

11월28일 林부총리 일본 방문. 클린턴, 金대통령에게 전화해 'IMF 요구 최대한 수용' 요청

11월29일 정부 - 협의단 심야 협상

11월30일 협상 사실상 마무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