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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영컬처 산책]3. 대지털 대항문화, 사이버 대안문화…가능한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산업세계의 정권,너 살덩이와 쇳덩이의 지겨운 괴물아. 나는 마음의 새 고향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왔노라. 미래의 이름으로 너 과거의 망령에게 명하노니 우리를 건드리지 마라. 우리는 너를 싫어한다. 우리의 영토에서 너의 주권은 없다… 너는 우리가 누구인지,우리의 세계가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 사이버스페이스에 너의 관할권은 없다.” 존 페리 발로의 ‘사이버스페이스 독립선언문(A Cyberspace Independence Declaration)’에서

전자프론티어재단(EFF)의 공동 설립자인 발로는 지난해 2월 7일 클린턴이 통신법 수정안에 서명하는 날 인터넷을 통해 사이버스페이스의 독립을 선언하였다. 전설적 록그룹 그레이트풀 데드의 작사자였고 히피이자 카우보이였던 발로는 90년에 미셸 케이포와 함께 전자프론티어재단을 공동으로 설립했으며 사이버스페이스의 자유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이버스페이스의 독립운동가다.

그가 사이버스페이스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인간 공동체에 대한 60년대의 낭만과 열정이 아직도 사그라들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자유와 평화 그리고 무소유의 유토피아를 갈망하던 동시대 히피는 재산과 인종·계급을 가리지 않는 인터넷 공동체와 닮았다. 60년대 대항문화의 좌절과 히피공동체 추구의 열망이 90년대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이버스페이스는 현실세계의 일부에 불과하다. 현실 권력은 사이버스페이스에 개입하여 이를 통제하고 관리한다. 사이버스페이스라는 별개의 세계가 현실세계와 독립되어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사이버스페이스는 분명히 풀뿌리 민주주의와 합의에 입각한 권력 창출이라는 긍정적인 가능성을 던져준다.

하지만 대자본과 사회적 영향력을 갖고 있는 집단이 가상현실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하여 가상세계가 현실세계의 또 다른 복제판이 된다면 가상현실이 주는 위안과 해방,민주적이고 다원적인 새로운 사회공간은 미처 싹이 트기 전에 시들고 말 것이다.

런 맥락에서 볼 때 네트의 진정한 독립은 현실세계의 뿌리에 끈끈하게 들러붙어 현실 자체를 변혁시키는 일상의 모반을 통해 이루어져야 함을 확인하게 된다. 사이버스페이스의 대안문화는 사회 저변 곳곳에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문화의 실험과 실천을 통해 만들어진다.

그래서 열려진 생각들이 서로 만나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고 그를 토대로 네트워크를 엮어 짜는 수평적 문화혁명이 필요하다. 대안적 문화를 일구려면 이를 추진할, 작지만 알찬 주체들이 도처에서 머리를 내밀어야 한다.

오늘의 불안을 극복하는 진정한 대안은 기술이나 하드웨어의 개발에 있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대안은 새 사람과 새 문화에서 나온다. 그런데 현실 세계가 억압과 권위주의로 찌들어 있고,우리의 생각이 고루함과 구태의연함으로 뒤덮여 있으면서 사이버스페이스의 창의력과 새로움을 기대한다면 이야말로 디지털 시대의 연목구어(緣木求魚)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이버스페이스의 대안 문화를 꽃피우려면 무엇보다 먼저 사이버스페이스의 진정한 뿌리인 우리 삶의 텃밭을 기꺼이 갈아엎는 데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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