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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재편과 4대 강 살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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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미국에서 멕시코로 흐르는 콜로라도강은 미국 내 유역만 해도 한강의 25배에 달한다. 두 나라는 1944년 멕시코로 초당 58t의 물만 보내주면 되도록 협정을 맺었다. 미국은 이 협정을 근거로 후버댐·글렌캐년댐과 같은 40여 개의 댐을 만들어 깨끗한 물은 자신들이 다 쓰고, 소금이 우러난 물은 청계천만 한 인공하천을 통해 멕시코에 넘겨줬다. 이것이 두 나라 간 물 분쟁의 요인이 되자 73년부터는 제염 시설을 이용해 소금기를 줄이기로 다시 협정을 체결했다.

이처럼 여러 국가나 지자체에 걸쳐 있는 공유 하천에서는 각자 제 욕심 차리기에 바쁘다. 상류의 청정산골에 축사를 세워 샛강을 오염시키거나 남의 젖줄 위에 공단을 세워 상·하류 간 시빗거리를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오염총량제를 도입, 하류로 흘려 보내는 오염물질의 양을 규제해 보기도 하지만 상류의 양심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항구적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

우리나라는 수자원을 생활, 공업, 농업, 하천 유지에 각각 20 대 10 대 50 대 20의 비율로 사용하고 있다. 한강은 그 비율이 32 대 12 대 24 대 32로, 생활용수 사용량이 많지만 도시가 하류에 집중돼 있고 농지가 적어 수질관리에 유리하고 오히려 물이 풍부하다. 또 낙동강은 21 대 11 대 45 대 22로, 전국평균과 비슷하지만 상류에 대구·구미·진주 등 도시와 공단이 있어 수질 확보에 어려움이 있다. 이에 반해 영산강과 섬진강은 11 대 4 대 76 대 9로, 농사일에서 발생하는 오염이 문제가 될 수 있다. 금강은 영산강과 유사하지만 낙동강과도 닮아 있다. 강이 서로 다른 모양이 되는 것은 지형적 특성 때문이지만 권력 향배와도 관련이 있다. 특히 낙동강의 수질 문제는 권력을 장악한 사람들의 과시욕과 권력을 지속하려는 욕심에서 비롯된 선심성 정책의 산물이다.

‘4대 강 살리기’에 말이 많다. 강바닥에 쌓여 있는 쓰레기를 치우고, 강에서 세제 거품과 스티로폼 조각을 없애며, 강가에 건강한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반대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4대 강 살리기가 하천 정비에 치중해 있어 목표로 삼는 일자리 창출과 공해 방지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또 과거처럼 지자체 단위로 사업을 추진하다 보면 통일성을 잃고 제 욕심 차리기를 반복할 가능성에 대한 걱정도 있다.

이명박 정부의 간판 사업인 4대 강 살리기는 전국을 대상으로 하는 거국적 사업이고 새 시대를 준비하는 치수사업이다. 이번 기회에 상류에는 공해가 없고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 하류에는 공해가 있더라도 부산물 처리가 쉬운 산업을 배치하고, 국가에 꼭 필요하지만 공해가 심한 산업은 특정 지역에 모아 국가가 책임지고 운영하는 방향으로 산업을 재배치함으로써 하천의 악화를 근본적으로 막아야 한다. 샛강이 맑아지고 강이 제 얼굴을 찾으면 청결한 자연과 결합한 새로운 산업이 활성화돼 지역경제도 살아날 것이다.

산업시설은 대략 20여 년 주기로 개선하지 않으면 낙후돼 경영이 악화된다고 한다. 산업시설을 리노베이션할 때 상·하류에 있는 산업을 순리에 따라 서로 바꾸도록 인센티브를 주고, 완벽한 임해 단지로 공해 시설을 모아 환경 부담을 줄이면 큰 부담 없이 산업 재편을 이룰 수 있다. 온 세계가 녹색성장에 관심을 갖고 있는 지금이야 말로 산업 재편의 호기이기도 하다. 이번만큼은 정치인들이 치산치수의 근본을 자각해 소탐대실의 우를 범하지 않기 바란다.

이정재 서울대 교수·지역시스템공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