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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바이트도 경력” … 현장 업무 익혀 정규직 잡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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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대학 졸업 후 스타벅스 건대병원점에서 아르바이트하다 정규직인 부점장이 된 이병엽(30)씨가 서울 소공동점에서 근무하고 있다. [김경빈 기자]

서일전문대 정보통신학과를 다니다 군에 입대한 신승섭(28)씨는 2003년 12월 제대한 뒤 집 근처 롯데마트 구리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고교 졸업 후 대형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해본 적이 있는 데다 사람들과 어울려 일하는 것을 좋아해 모집 공고를 보자마자 지원했다. 그가 매장에서 처음 맡은 일은 고객만족센터 지원 업무. 문제가 있는 물건을 교환·환불해 주고, 고객이 계산대 근처에 사 가지 않고 놓아둔 상품을 수거하는 고된 일이었다. 그는 “힘들어하는 아르바이트 사원이 많아 이직률이 높았는데, 나이가 맏형 격이라 동료들을 다독이며 일했다”고 말했다. 2005년 매장 보수공사를 하던 때엔 아르바이트생이지만 쉬는 날에도 출근했다. 리더십을 갖고 진득하게 일하는 그는 간부사원의 눈에 띄어 2006년 8월 정규직원이 됐다. 5급 사원으로 입사했는데, 이달 4급으로 승진해 인사·총무 파트를 담당하게 됐다. 그는 “매장 경험이 있다 보니 함께 대졸 공채로 들어온 동기들이 ‘어떻게 일을 그렇게 빨리 배울 수 있느냐’고 묻곤 한다”며 “아르바이트를 시작할 때는 정규직 입사를 기대하지 않았는데 열심히 하다 보니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다”고 했다. 구리점에는 신씨처럼 아르바이트를 통해 정규직이 된 사원이 수십 명이다.

아르바이트라고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 아르바이트도 경력이다. 취업난 속에 대졸 공채는 가뭄에 콩 나듯 한다. 대신 인턴제를 운영하는 곳이 많다.

요즘은 신입사원을 뽑더라도 인턴 과정을 통해 자질을 확인한 뒤 일부를 고르는 게 일반적이다. 이에 더해 아르바이트를 경력으로 인정해줘 정규직으로 뽑는 기업도 늘고 있다. 현장에서 업무를 익힌 이들을 뽑는 게 경쟁력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아르바이트생이지만 진가 보이면 회사가 안다=스타벅스 사회공헌팀 이병엽(30)씨도 아르바이트를 하다 직장을 잡았다.

한국외국어대 독일어학과를 2006년 2월 졸업한 그는 같은 해 5월부터 스타벅스 건대병원점에서 파트타임 바리스타(즉석에서 커피를 만들어주는 사람)로 일했다. 일과 후에는 매장에 남아 3시간 이상씩 커피공부를 했다. 월급을 털어 커피 관련 서적을 사서 읽는 노력 끝에 그해 9월 커피마스터 자격을 땄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 6개월 만인 2007년 1월, 그는 연봉제를 적용받는 정직원으로 채용돼 풀타임 바리스타로 일하게 됐다. 이후 서울 시내 여러 점포의 부점장을 맡았고, 지역 대표 커피마스터로 선발되기도 했다.


스타벅스는 매장 아르바이트를 해본 이들 중에서만 정규 직원을 뽑는다. 이 회사 박찬희 홍보사회공헌팀장은 “커피 지식뿐만 아니라 서비스업의 특성상 고객과의 소통이 중요하기 때문에 매장에서 직접 고객을 상대해본 이들을 내부 승진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아르바이트 시절 남들이 손대지 않는 곳을 찾아 청소하고 회사 봉사활동에도 적극 참여하는 등 내 회사처럼 일했더니 알아주더라”고 전했다.

◆아르바이트도 진로에 맞춰 선택= 2005년 서울여대 언론영상학과를 졸업한 임나혜(27·여)씨는 학교에 다니면서 2년 동안 케이블TV 온게임넷에서 조연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는 “내 이름을 걸고 프로그램을 만드는 프로듀서를 해보고 싶었기 때문에 일부러 해당 직종을 골랐다”고 소개했다. 그는 당시 온게임넷에서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조연출을 맡았다. 조연출을 하느라 체력 면에선 힘들었지만 직장에서 인간관계를 어떻게 맺는지, 팀으로 일할 때 성과를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배웠다. 그는 그 경력을 인정받아 현재 온게임넷의 PD가 됐다.

정승일(28)씨도 유통업계에서 일하고 싶다는 목표를 세우고 훼미리마트 경기도 안성지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경우. 그는 올 1월 이 회사에 정규직으로 입사했다. 정규 사원이 되기 위해 훼미리마트 모니터 요원을 하고 공모전에도 참가했다. 한경대 행정학과를 나온 그는 “유통업 중 최일선에 있는 편의점에서 일해보고 싶었는데,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안 지역 소비경향에 대해 배우며 진로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훼미리마트는 매장에서 5개월 이상 아르바이트를 한 이들에게 서류전형을 면제한다. 지난해의 경우 신입사원 131명 중 15명이 이런 과정을 거쳐 입사했다. 이 회사 황환조 HR팀장은 “아르바이트 출신 사원이 점포 운영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앞으로도 적극 우대해 채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외식업체 중에는 아르바이트 경력이 필수 요건인 곳이 많다. 피자헛에서는 아르바이트를 6개월 이상 한 뒤 사원·어시스트매니저·매니저·점장으로 승진할 수 있다. 매장 파트타임 근무 경력이 없으면 매니저가 될 수 없다. 패밀리 레스토랑의 점장 대부분은 아르바이트 출신이다.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한 지 9년 만에 충무로점 점장이 된 김태옥(33)씨는 “파트타이머 경험이 점포 관리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인크루트의 김현희 리서치팀장은 “아르바이트는 실제 직무를 수행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만큼 구직자들도 입사지원서나 면접을 통해 자신의 경력을 적극 알리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김성탁·김기환 기자 ,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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