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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길잡이]논술 '고전출제' 어떻게 대응하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공자나 맹자를 읽어야 합니까, 플라톤의 폴리테이아를 읽어야 합니까. " 서울대.연세대.고려대.한양대등 서울시내 주요 12개 대학 입학관련 처장들이 모여 '논술고사를 교과서에 언급된 동서고금의 고전을 바탕으로 출제한다' 고 발표한데 대해 많은 학생과 학부모, 일선 고교 교사들이 물어온 내용이다.

이는 전적으로 오해에서 비롯된 질문이다.

발표 내용을 살펴보면 '고전을 바탕으로 출제한다' 는 결코 '고전에서 출제한다' 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논의의 배경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입학관련 처장들은 논술이 암기식 학습의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논리적 사고와 창의적 사고의 부족을 메꿔줄 대안으로 지속적으로 시행돼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선정적인 입시관련 정보와 입시산업 때문에 그 원래의 취지가 정착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대부분의 학원들이 예상문제를 찍어 글쓰기 요령에 집중하고 있고 쪽집게로 소문난 강사에게 학생들이 몰리기도 한다.

심지어는 연말에 무책임하게 수백개의 논제를 제시하기만 하고 대학에서 유사한 논제가 출제될 경우 이를 대대적으로 선전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입시관련 처장들은 단기적인 요령 익히기식의 논술교육을 막겠다는 것이 모임의 취지였다.

물론 지금까지도 단기적 요령 익히기로는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었지만 이제는 그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대신 중.고교 논술교육이 정상화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장기간의 교육을 통하지 않고서는 결코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도록 '글읽기 능력 (내용파악 능력)' 과 '글쓰기 능력 (표현.논리적 구성.근거설정.창의력)' 등을 중점적으로 평가해 논술의 본래 취재를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전을 바탕으로 출제한다' 는 것이 이런 목적과 어떤 연관이 있을까. '고전을 바탕으로 출제하겠다' 는 것의 중심적인 내용은 시사적인 주제를 다룬 논제를 출제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어떤 시사적 쟁점을 다루거나 시사적 지식을 묻는 논제보다 청소년들의 인생관을 결정할 수 있는 자연.사회.인간에 대한 원칙적.보편적인 주제를 출제하겠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경우에 따라 고전에서 제시문이 출제될 수도 있다.

그럴지라도 그것이 현실적으로 고교생들에게 요구할 수 있는 주제의 범위에 제한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구태여 입시학원의 눈치를 보거나 주제의 중복을 피하려 하기 보다는 고교 교육을 정상적으로 받은 학생들에게 보편적으로 타당한 논제를 출제하겠다는 의도이다.

이럴 경우 특정 시사적 주제에 대한 지식보다 보편적인 주제지만 그 사고의 깊이에 따라 점수의 차이가 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갑자기 '사서삼경 (四書三經)' 이나 '삼국지' 를 뒤져 볼 것이 아니라 충분히 예측 가능한 원칙적이고 보편적인 주제들을 보다 깊이 있게 정리해 두는 것이 필요하다.

이들 12개 대학은 입시산업의 폐혜를 줄이기 위해 논술관련 정보를 중.고교에 직접 제공하는 한편 논술의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논술의 분량과 시험시간을 늘린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98학년도 입시후 내년 2월 각 대학의 논제를 공동으로 분석 평가하고 필독서 선정과 공동문제 출제등을 협의를 할 예정이다.

김창호 학술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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