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문화지도]73.마임…'삶의 전체'를 몸짓으로(1)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마임 (mime) 하면 떠오르는 것? 대개는 얼굴에 하얀 분칠을 한 배우가 피에로 복장을 하고 등장, 로봇같은 뻣뻣한 움직임으로 사람을 웃기는 행위를 연상할 것이다.

당연히 대사는 없다. 사실 이정도의 식견만 있으면 마임에 대한 이해는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다.

기본적으로 마임을 '볼' 자세가 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마임을 볼 '필요충분조건' 엔 훨씬 미흡하지만. 모두에 언급한 장삼이사 (張三李四) 의 마임관중 재미있는 것이 얼굴에 분칠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점. 어쩌면 하얀분칠의 개념을 아는 것은 마임이해의 핵심이랄 수 있다.

마임에 분칠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마임예술의 출발점을 적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분칠의 미학을 알 필요가 있다.

중견마임가 유홍영의 말. "외국에서도 '마임 = 분칠' 의 출발선이 언제부터인지 불문명하다.

보편적이지도 않은 일이다.

그러나 그 '하얀얼굴' 은 표정의 백지 상태, 즉 무 (無)에서 인생의 희로애락을 창조한다는 마임의 대전제를 이해하는 키 포인트가 된다.

" 마임은 이처럼 무의 세계에서 인간과 우주의 삼라만상을 창조해 내는 상상의 세계다.

상상의 세계를 믿는 사람에게 그 세계는 곧 현실이다.

상상의 세상을 현실로 공유하는 사람에게 마임은 지고 (至高) 의 예술로 다가선다.

지금까지 숱한 마임가들이 삶과 죽음등 다소 추상적인 주제에 매달려 온 것은 그 철학적 깊이와 인간 육체의 교통 (交通) 을 이루고자 함이었다.

현대마임의 거장 마르셀 마르소는 '태어남.젊음.장년.노인.죽음' 이란 작품에서 이같은 인간의 순환을 보여주었다.

흉내 (mimos) 라는 어원을 가진 마임은 고대 그리스까지 그 역사가 거슬러 올라간다.

곡예사.요술쟁이.배우등으로 구성된 이들이 풍자적이고 해학적인 내용을 소란스럽게 공연했는데 이것이 마임의 기원이다.

로마로 넘어가 그 전성기를 맞이하면서 판토마임 (pantomime) 으로 불렸다.

현대에 들어 마임과 판토마임은 이런 지역차이의 차원을 넘어서 일정한 차별성을 갖는 형식적 특징으로 구분된다.

한국마임협의회 유진규 대표의 말. "그리스 마임이 보다 규모가 커지면서 로마에서는 판토마임으로 불린 것같다.

판토마임의 판 (pan) 은 모든 (all) 것을 뜻했다.

이러던 것이 요즘들어서는 형식과 내용의 차이로 바뀌었다.

판토마임은 주로 분명한 이야기 (주제)가 있으면서 희극적인 것, 즉 하얗게 분칠을 하고 성격이 분명한 채플린식을 일컫는다.

반면 마임은 일정한 줄거리도 없으면서 꼭 희극적일 필요도 없는 형식을 총칭한다.

" 서양연극에서 마임의 영향은 지대하다.

중세를 거치는 동안 마임을 하는 유랑배우들이 신비극에 참여하면서 르네상스를 이끌었고, 이태리에서는 마임을 모태로 양식화된 즉흥 가면희극 '코메디아 델 아르테' 를 낳았다.

프랑스의 몰리에르와 영국의 셰익스피어의 작품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20세기초 뮤지컬과 영화에도 마임이 개입했다.

특히 무성영화시대의 두 거장 찰리 채플린과 마이클 키튼은 마임을 대중예술로 승화시킨 선구자들이었다.

마임예술 자체로 돌아가 현대마임이 출발하는 계기는 프랑스인 자크 코포의 작업이다.

그는 신체훈련에 역점을 둔 새로운 연극을 주장했다.

그의 제자들은 거의 벗은 몸으로 표정없는 가면만 쓰고 연기했다.

가면을 통해 외부세계와 차단된 배우는 거짓 꾸밈과 교묘한 기교, 과장된 연기를 내던지고 맨몸으로 순수를 표현하는 배우가 됐다.

1923년 자크 코포의 학교를 찾아간 에티엔느 드크루는 가면훈련하는 학생들을 보고 몸짓이 언어보다 강하다는 것을 직감했다.

이것만이 진지한 예술이라고 생각한 그는 이후 50여년간 마임의 이론개발에 매달렸다.

마임의 대명사 마르셀 마르소는 그의 제자다.

하얗게 분칠을 한 얼굴에 빨간 꽃이 핀 실크모자를 자랑하는 그는 2차대전이후 상실감에 휩싸여 있던 유럽인들의 심성을 웃음으로 달랬다.

마르소는 드크루의 마임 테크닉과 채플린의 연기패턴, 19세기 낭만적인 판토마임을 접목해 '비프 (Bip)' 라는 인물을 창조해냈고 전세계적인 사랑을 받았다.

역사적 전통을 기반하여 발달한 서구의 마임에 비해 한국 마임은 자생적인 출발을 보였다.

유학등을 통해 서구에서 직수입된 것이 아니라 몇몇의 특별한 관심속에서 탄생했다.

유진규는 "우리나라의 마임은 정체된 연극으로부터 시작됐다" 고 한다.

60년대말 대사위주의 정적인 연극에 반발한 일부의 젊은 연출가들이 움직이는 연극을 주장하면서 몸의 표현에 관심을 갖게 됐다.

68년 롤프 샤레의 마임이 국내에 처음 소개되면서 불을 지폈고, 극단 에저또의 방태수가 본격적으로 이를 수용하면서 맹아를 보였다.

유진규.김성구.김동수등은 70년대 이런 흐름의 물꼬를 튼 한국 마임의 1세대. 이들에 의해 마임은 실험극과 전위극의 형태로 발전됐다.

마임의 번역화도 나름대로 시도됐는데, 육체표현.침묵극.현장 무언극등의 용어가 혼용됐다.

아무래도 한국 마임의 르네상스는 80년대 중반부터라고 할 수 있다.

1세대에 이어 2세대군을 형성하는 유홍영.임도완.최규호.박상수.심철종등이 배우와 창작자로 마임에 뛰어들면서 활기를 되찾았다.

이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89년에 1.2세대 주축의 한국마임협의회가 발족했고, 동시에 한국 마임페스티벌의 탄생을 보게됐다.

한국 마임페스티벌은 1회 (동숭아트센터) 를 끝으로 춘천으로 공연장을 옮겼고, 이듬해부터 춘천국제마임축제 (매년 5월) 란 이름으로 바뀌어져 가을에 열리는 춘천인형극제와 함께 춘천을 상징하는 문화상품으로 자리잡게 됐다.

이 축제에는 국내외 유명 단체와 마임가들이 참가한다.

지난 5월 9회 행사에는 폴란드 출신의 저명한 마임가 스테판 니지알코프스키가 내한, 강습과 공연을 펼쳐 큰 반응을 이끌어 냈다.

현재 한국 마임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한국마임협의회의 회원은 20여명 정도. 타 분야에 비해 숫적인 열쇠를 면치 못하고 있지만 그 자부심만은 대단하다.

특히 유럽을 중심으로 현대 연극과 무용의 핵심요소로 다시 마임이 부상하면서 인접 장르와의 '크로스오버' 활동이 기대된다.

그러나 타분야에서의 본격적인 수용과 이해는 일천하기 짝이 없다.

유진규는 이를 자생적 출발의 한계때문으로 풀이한다.

최근들어 마임 선진국의 테크닉을 배워 타분야와의 골깊은 간극을 메우려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어서 아주 고무적이다.

연극.무용과의 만남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는 남긍호는 동양인 최초로 프랑스 마르셀 마르소 마임학교의 정식 디플롬을 받은 실력파. 임도완.박미선등도 주목해야할 차세대들이다.

이와함께 각 대학 연극과에서는 점차 마임을 정식과목으로 채택하는 추세여서 마임에 대한 특별한 애정과 사랑이 더욱 절실해졌다.

정재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