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으로 품어 흙집에 살어리랏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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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을 배워본 적 없는 유씨가 귀동냥으로 지은 어스백 하우스는 선원사 인근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이다.

(사진) 프리미엄 전영기 기자 ykooo@joongang.co.kr

연(蓮)요리로 유명한 강화도 선원사를 가노라면 근방에 독특한 주택 한 채가 눈길을 끈다.원통형으로 마치 키가 제각각인 버섯 세 송이가 모인 듯하다. 유설현(55)씨가 6개월 여의‘나홀로’산고 끝에 탄생시킨 어스백(Earth Bag: 흙부대)하우스다.

 “어릴 적부터 뚝닥거리며 만드는 걸 좋아했어요. 집도 내 손으로 지어 살겠노라 별러 왔죠.” 1년 전, 유씨는 친환경 흙집을 직접 짓기로 작정했다. 한 살이라도 더 먹기 전에 꿈을 이루고 싶어서였다. 때마침 20여 년간 운영했던 목장과 집을 내놓은 터여서 이사할 집이 필요하기도 했다.

 유씨는 친환경주택 관련서적을 뒤적거리다 어스백 하우스를 발견했다. ‘이거다’ 싶은 한편‘흙부대로 지은 집이 얼마나 견딜까?’란 의구심이 들었다. 백문불여일견이라고 어스백 하우스가 있다는 전남 장흥까지 한달음에 내려갔다. “직접 보니 시공법도 어렵지 않고 콘크리트 집만큼 튼튼하더라고요.” 자신감이 생겼지만 막상 결정하자 막막했다. 건축에 관한 한 완전 초짜였기 때문이다. 설계도구는 낡은 노트와 몽땅한 4B연필이 전부. 제도용지·제도판·T자조차 없이 작성한 설계도는 도면이라기보다는 그림에 가까웠다. “과연 이걸로 집이 나올까.” 스스로 생각해도 어처구니 없어 보였다. 유씨는 3개월간 전문가들의 조언과 관련서적을 보면서 설계도와 재료목록 등을 준비했다.

 지난해 5월. 40만원 주고 산 굴삭기로 터를 다지며 공사를 시작했다. ‘최소 비용으로297m²(90평)의 대지를 최대한 이용한 집’을 짓는 것이 목표였다. 지하실을 만들기 위해 파낸 흙은 벽으로, 철거된 가옥에서 주워온 나무는 창틀 자재로 쓰였다. 인건비가 만만찮아 처음엔 직접 시공에 나섰다.

 하지만 흙부대에 일일이 흙을 담아 벽을 쌓아올리는 작업은 여간 난감한 일이 아니었다.“하는 수 없이 인부들을 불렀는데, 설계도가 구체적이지 않아 오히려 손이 더 많이 갔어요. 결국 혼자하기로 했죠.” 가뜩이나 힘든 판에 장마가 겹쳤다. 여차하면 허물어질 가능성이 컸다. 철조망을 깔아 흙부대를 단단히 고정시켜야 했지만 재료비 부담이 너무 컸다.

 이리저리 궁리하던 끝에 틈틈이 모았던 자료에서 새로운 공법을 발견했다. 망사튜브(곡물건조용으로 사용하는 망사)가 답이었다. 벼 낱알이 빠져나갈 수 없을 정도로 촘촘한 망사튜브는 흙부대보다 훨씬 적은 양으로 손쉽게 벽을 쌓아올릴 수 있었다. 또한 망사 사이의 흙들이서로 밀착돼 철조망도 필요 없었다.

 11월 중순. 유씨는 벽과 바닥을 마감하자마자 바로 이사했다. “확실히 달라요. 집이 숨을 쉬는 느낌이에요.” 우선 통기성이 뛰어났다. 생선구이나 청국장 따위의 음식을 조리해도 냄새가 금방 빠져나갔다. 보온성도 빼어났다. 혹한에도 유씨는 보일러를 하루 두 시간 이상 틀지 않았다. 흙으로 지어진 바닥과 벽은 한 번 품은 온기를 오래 품기 때문이다. 반대했던 아내 역시 ‘이제는 콘크리트 집에서 못살 것 같다’고 흙집 예찬론을 편단다.

 인터뷰가 있던 지난달 26일에도 유씨는 여전히 공사 중이었다. 집으로 들어서는 돌계단을 만들고 마당까지 직접 꾸밀 참이다.

 “이 집은 단순한 ‘거주지’가 아니에요. 구석구석 내 땀과 혼이 스민 분신이나 다름 없죠.” 분신을 어루만지는 유씨의 얼굴에 미소가 번져간다.


프리미엄 이유림 기자 tamar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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