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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 맛·조리법에 세계화 가능성 보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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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미국 뉴욕타임스는 2007년 말 ‘츠지를 주목하라’는 기사를 실었다. 일본의 요리학교인 츠지조그룹학교 교장 츠지 요시키(45·사진)에 대한 기사였다. 츠지 교장은 이 학교의 창립자인 츠지 시즈오의 장남으로 1993년 부친이 작고한 뒤부터 학교를 맡았다. 영국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고 미국에서 예술사를 공부한 그는 세계 각지의 유명 레스토랑을 섭렵하고 스타 요리사들과 각별한 우정을 나누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가 펴낸 『세계를 움직이는 미식의 테크놀로지』(중앙북스에서 번역판 출간)도 이 같은 우정을 토대로 레스토랑 평가지 미슐랭 가이드가 인정한 스타급 요리사 6명을 집중 인터뷰해 그들의 미식철학을 조목조목 짚어낸 책이다. 한국어판 출판을 기념하기 위해 방한한 그를 만났다. 츠지 교장은 방한기간 동안 지난해 3월 한국의 피디피(PDP) 와인주식회사와 손잡고 서울에 개원한 ‘츠지원(Tsuji+1)’의 1주년 축하 행사에 참여하고, 강연회를 열고, 서울의 유명 한식당을 방문하는 등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만난 사람=채인택 피플·위크앤 에디터

-『세계를 움직이는 미식의 테크놀로지』라는 책 제목이 재미있다. 당신에게 미식이란 어떤 의미인가.

“선친께서 ‘요리는 예술이지만 예술이 아니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요리를 예술로 만들기 위해선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다. 내게 미식이란 ‘일관되게 지속되는 우수성(consistency of excellence)’이다. 이 훌륭함은 여러 요소가 융합돼야 만들어진다. 농업·어업과 같은 업계의 노력뿐 아니라 하나의 요리를 만들기 위해 관련자들이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고 최고의 결과를 내는 것들이 그런 요소들에 해당한다. 내가 인터뷰한 요리사들은 장인 정신을 가진 예술인이다. 그들의 음식을 향유한다는 건 그들의 예술을 존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세계가 경제 위기에 직면한 이 상황에서 책의 의미를 찾는다면.

“음식과 요리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발전해왔으며 미식은 항상 인기를 끌었다. 역사의 발전과 함께 미식을 원하는 고객의 범위는 더 넓어졌다. 세계가 경제위기로 힘들수록 인간과 미식의 관계를 곰곰히 생각해봐야 한다. 1945년을 상기해보자. 프랑스는 전쟁으로 인해 완전히 폐허가 됐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그 해의 포도 농사는 20세기를 통틀어 손에 꼽히는 풍작이었다. 전화(戰禍)와 경제위기 속에서도 인류에 없어서는 안 될 미식 문화는 면면히 이어져왔다.”

- 많은 유명 요리사들이 정식 교육을 받지 않고 독학으로 성공했는데. 츠지조그룹교의 교육 철학은?

“이건 내가 유명 요리사들에게 항상 하는 질문인데(웃음). 요리의 기술에는 한계가 있다. 그 기술을 어떻게 연마하고 이용해서 행복을 창조해내는지가 진정한 관건이다. 기술의 기본 틀(framework)을 제대로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지만 또한 그 틀 안에 수많은 다른 접근법이 있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츠지조그룹교 교장으로서 책임은 학생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모든 학생들이 세계적인 요리사가 되길 바라지는 않는다. 작은 커피숍을 운영하면서도 자신이 행복하다면 그걸로 됐다. 산을 오르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어떤 방법이든 산을 열심히 오르면 정상에 다다르는 거다.”

- 일본은 스시 등 일본 식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데 성공했다. 한식을 세계 무대에 성공적으로 데뷔시키기 위한 조언을 부탁한다.

“먼저 한식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를 내려야 한다. 뭘 세계화하고 싶은가? 김치? 궁중 요리? 아니면 한국의 식사예절? 일식이 세계화에 성공했다고 하는데, 동의하기 어렵다. 스시와 같은 일본 요리의 종류가 상업적으로 세계화되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일식의 독특한 미학까지 문화적으로 세계화된 건 아니기 때문이다. 일국의 음식 세계화는 제대로 된 전략 없이는 안 된다. 전략을 세우려면 다루고 있는 주제가 뭔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한국 정부도 한식세계화에 대한 노력을 벌일 참이라는 얘길 이번에 들었다. 일본 정부에 관련 문제로 조언을 한 내 경험에 비추어 얘기 하자면 먼저 한식의 정의를 내리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이 정의를 바탕으로 분명한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돈을 버는 게 목적인지, 돈은 벌지 못해도 한국 문화를 알리는 게 목적인지. 정부·학계 관계자부터 농축산업인은 물론 요리·식당업계가 모두 모여 허심탄회한 논의를 오랫동안 해야 한다.

어떤 나라든 자국 음식을 있는 그대로 세계에 내놓을 순 없다. 한식을 전문적으로 알지는 못하지만 맛을 보고 요리를 보니 세계화 될 수 있는 부분이 명확히 보인다. 조리법이 서구의 것과 상당히 비슷하면서도 한국만의 독특한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이를 조심스럽게 잘 활용하길 바란다.”

정리=전수진 기자, 사진=츠지원 제공

◆츠지조(Tsujicho)그룹교=요미우리 신문의 범죄 전문 기자였으며 프랑스 요리에도 조예가 깊었던 츠지 시즈오(1933-1993)가 1960년 일본 오사카 아베노에 세운 요리 전문학교다. 미국의 CIA(Culinary Institute of America)와 프랑스의 르 꼬르동 블루(Le Cordon Bleu)와 함께 세계 3대 요리학교로 불린다. ‘가르치는 것으로 배운다’라는 라틴어 문구인 ‘도켄도 디스키무스(Docendo Discimus)’를 건학 이념으로 한다. 세계 곳곳에 분원을 세웠으며 지난 49년간 전세계에서 약 12만 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일본과 세계 각지에서 약 2천명의 졸업생이 오너 셰프(owner chef·자신이 소유한 레스토랑에서 요리하는 셰프)로 활약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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