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G20 정상 합의, 구체적 행동계획으로 뒷받침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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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세계적인 경제위기 타개를 위해 지난 2일 영국 런던에 모인 G20 정상들이 세계경제 성장과 금융시스템 안정을 위한 국제 공조를 지속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정상회의 선언문은 ▶성장과 고용의 회복 ▶대출 기능 회복을 위한 금융시스템 개선 ▶금융 규제 강화 ▶국제 금융기구 개혁 ▶보호주의 배격과 세계무역 증진 ▶공평하고 지속 가능한 경제 회복 등을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는 데 정상들이 합의했다고 밝혔다. 정상들은 특히 세계적인 신용 경색을 풀기 위해 1조 달러의 유동성 지원 자금을 조달하고, 경기 부양을 위해 내년 말까지 각국이 모두 5조 달러의 재정자금을 투입하기로 했다. 이번 정상선언문은 지난해 첫 G20 정상회의에 비해 상당히 구체적이고 진전된 합의 내용을 담고 있다. 정상회의를 앞두고 불거진 주요 참가국들 간의 이견과 갈등에도 불구하고 이만한 정도의 합의를 이끌어 낸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단 하루 동안 20개국 정상이 모여 합의문을 조율하다 보니 전체적으로 원칙적이고 총론적인 합의에 그쳤다는 인상이 짙다. 구체적인 실천 방안이 결여된 정상선언문은 그야말로 선언에 그치고 말 우려가 크다. 예컨대 재정지출은 각국이 어떤 식으로 확대해 나갈지, 보호무역 조치를 어떻게 막을 것인지, 금융시스템을 안정시키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규제를 강화해 나갈지,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 금융기구의 재원 확대를 위한 출연금은 어떤 비율로 분담할 것인지가 분명치 않다. G20 정상회의가 위기에 빠진 세계경제를 구하고 진정으로 세계경제의 번영에 실질적인 기여를 하기 위해서는 정상회의에서 합의한 원칙적 방향을 구체적인 행동계획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막연한 국제 공조가 아니라 손에 잡히는 해법을 기대한다.

이번 런던 회의를 전후해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세계경제를 이끌어 가는 리더십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과 G7 국가들이 주도하던 세계경제의 정책적 의사결정 구조에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이다. 사실 작금의 경제위기 타개를 위한 논의의 장이 기존의 G7에서 G20으로 확대된 것 자체가 이러한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신흥 경제 강국들을 포함하지 않고는 세계경제의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특히 2조 달러의 외환보유액을 앞세운 중국이 세계경제 무대에서 미국에 버금가는 핵심 국가로 부상한 것은 이번 회의에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다. 여기에 러시아와 인도·브라질 등 덩치 큰 신흥국들의 영향력도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커지고 있다.

앞으로 각종 국제회의와 국제기구의 운영에도 신흥국가들의 경제력에 걸맞은 지분 조정이 이뤄질 전망이다. 세계경제의 새판이 짜이는 것이다. 여기서 각국이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각국의 위상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세계경제 질서의 지각변동 와중에 한국이 G20의 공동 의장국으로 활동하게 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경제 규모나 발전 단계 면에서 선진국과 신흥 개발도상국의 중간자라는 입지를 잘 활용하면 국제적으로 우리나라의 위상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좋은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