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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지하철의 안전을 위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서울지하철은 하루 5백만명이 이용할 정도로 도시교통의 효자노릇을 해 왔다.

그 덕분에 지하철 부채가 서울시 전체 부채의 90% 이상을 차지해도 시민들은 지하철 확충이 교통난의 유일한 해결책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최근 화재.충돌.탈선 등 사고가 잇따르면서 안전에 비상이 걸렸다.

기실 이러한 사고는 이미 오래 전부터 예견돼 왔다.

차량정비의 경우 규정대로 검수가 이루어지지 않고 플래시와 망치에 의존한 육안검사로 차량출고시간에 맞추기 바쁘다.

그러므로 내구 (耐久) 연한이 지난 시설과 차량이 교체되지 않고 이런 비효율적인 차량검수체계가 지속되는 한 사고를 방지할 수 있는 예방검수는 불가능한 실정이다.

물론 근무기강도 제대로 잡힐 리 없다.

선로보수 또한 레일시공 및 보수는 외주용역에 맡기고 점검관리는 공사측이 담당하는 식으로 이원화돼 있어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안전관리도 이루어지기 어렵다.

방재대책과 수습체계도 대단히 원시적 수준이다.

지하철은 가스관.전기.상수도관 등 다양한 지하매설물과 겹치고 최근에는 역사복합개발에 따라 많은 상가시설들이 들어서 있다.

화재 등의 사고가 발생할 경우 대규모 재난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방재 (防災).방화시설 및 사고후 수습을 항상 점검관리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안전종합상황실을 운영하고 있지만 형식에 그쳐 현업직원들조차 사고가 발생할 경우 대처능력이 없다고 생각한다.

지하철 안전운행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첫째, 서울시의 지하철정책이 짓기만 했지 다룰 줄은 모르는 건설위주에서 이젠 안심하고 편하게 탈 수 있도록 하는 운영개선 위주의 정책으로 전환돼야 할 것이다.

날로 늘어나는 건설부채는 경영을 압박하고 안전에 대한 투자여력도 크게 제약하고 있다.

따라서 이용수요가 불확실한 3기지하철 10, 11, 12호선의 투자규모를 줄이고 중앙정부가 재정을 지원해서라도 기존 지하철차량 및 시설의 유지관리.안전에 대해 투자를 대폭 늘려야 한다.

둘째, 외부 입김에 좌우되지 않는 책임경영과 전문경영체계가 구축돼야 한다.

모든 업무에 대해 서울시의 결재를 받아야 하고 독자적인 투자와 계획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는 책임소재조차 불분명하다.

경영을 책임진 역대 임원중 대다수가 서울시나 외부기관 혹은 군 퇴역자의 낙하산 인사로 채워져 전문성이 없다는 점 또한 지하철 운영의 파행을 심화시키는 요인이었다.

아울러 방만한 조직운영을 쇄신하기 위해 조직 간소화, 업무체계 개선, 기술교육 강화, 부분 민영화방안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셋째, 역세권 개발로 인해 주요 역사시설에 다양한 시설이 밀집하고 지하매설물이 병설돼 있는만큼 종합방재센터를 설치할 필요가 있다.

1941년에 설립된 일본 도쿄 (東京) 지하철은 승객과 시설이 밀집된 주요 환승역인 긴자 (銀座) 역.신주쿠 (新宿) 역 등에 종합방재센터를 설치.운영하고 있다.

넷째, 지하철 관련기술과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연구센터 설립 및 인력양성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현재와 같이 부품수급체계가 안정돼 있지 않고 기술인력도 제한돼 있는 상황에선 경쟁력 있는 지하철을 유지할 수 없다.

현업직원들에겐 미래의 발전 가능성을 제시해주는 동시에 국내 지하철기술을 개발해 수출까지 도모할 수 있는 기틀을 만드는 일은 안전에도 큰 기여를 할 것이다.

지하철은 환경친화적이고 수송효율이 탁월한 대중교통수단이다.

반면 막대한 건설비와 유지관리비가 소요되고 고베 (神戶) 지진에서 드러나듯이 도시재난에 극히 취약하다.

지하철 안전은 투자우선순위 조정과 운영조직.분야별 안전대책 등 총체적인 개혁이 이루어질 때만 확보될 수 있으며, 그 장점을 최대한 살려나갈 수 있을 것이다.

시민과 전문가, 서울시와 공사가 함께 이 문제에 대해 종합진단.검토할 수 있는 지하철개혁기구를 설치할 것을 촉구한다.

최정한 <도시연대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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