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형 박사, “우리 사회 조울증 끊임없는 공부로 치유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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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창의성을 화두로 삼은 책 『공부하는 독종이 살아남는다』를 펴낸 이시형 박사. [중앙북스 제공]

“현재 한국 사회를 한마디로 진단하자면 조울증(기분이 비정상적으로 좋아지는 조증과 우울해지는 울증이 번갈아 나타나는 정신적 장애)입니다. 2002 한·일 월드컵이나 최근 WBC 야구 경기의 승리를 받아들이는 자세에서는 조증, 경기불황에 대처하는 자세를 보면 울증을 읽을 수 있지요. 기분의 변화가 심하면 항상 불안하고 초조하지요. 이런 괴로움에서 스스로 헤어나올 수 있는 방법은 끊임없이 공부해 실력을 쌓는 겁니다.”

『배짱으로 삽시다』『터놓고 삽시다』를 비롯해 한국인의 심리를 다룬 저서를 50권 이상 펴낸 정신과 전문의 이시형(75) 박사가 이번에는 한국인에게 공부를 권하고 나섰다. 최근 『공부하는 독종이 살아남는다』(중앙북스)라는 책을 펴내면서다.

특목고 입학부터 대입·입사 시험에 외국어·자격증·승진 시험까지 가뜩이나 시험지옥에 시달리는 한국인에게 또 공부를 하라고 권하는 이유부터 물어봤다.

“실력을 기르는, 진정한 의미의 공부를 하자는 이야기지요. 믿을 거라곤 인적 자원밖에 없는 한국이 살아남으려면 창의력이 필수고, 창의력을 키우려면 공부를 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는 무엇보다 효과적으로 공부하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재테크라는 말도 있듯, 공부에도 ‘공테크’가 필요해요. 약게, 효율적으로 공부를 해야 하지요.” 방법을 알려달라고 하자 ‘세로토닌’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뇌 안에서 생성되는 물질인 ‘세로토닌’이 답입니다. 주변 환경이 평화롭고 마음이 편해지면 분비되는 물질이죠. 이 물질이 충분히 나오면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며 집중력도 강해집니다. 효과적인 공부를 하려면 이런 청정·행복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중요합니다.” 약을 먹거나 해서 뇌 속에서 세로토닌의 분비를 촉진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또 하나, 감성을 담당하는 우뇌 개발에 노력을 기울여 창조성을 키워 ‘창재(創才)’가 되어야 합니다. 천재는 원래 영상과 감성으로 공부를 하지요. 한국인들은 원래 상당히 ‘우뇌적’인 사람들이라는 거예요. 가능성이 상당하단 얘기지요.” 창의력을 기른 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서 돈도 벌고 성공도 일궈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래서 자녀들에게 모든 사람이 가는 길을 가라고 하는 부모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고 했다.

현재의 경제위기와 관련해 그는 “한국 사회가 총체적 금단 증세에 시달리고 있다”고 평했다. “한때 한국사회에선 엔도르핀을 굉장히 중시하고 떠받들었지요. 하지만, 엔도르핀엔 중독성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요. 엔도르핀이 충만한 상태만을 추구하다 보니 그렇지 못하고 힘든 상황, 지금과 같은 때는 심한 허탈감을 느끼면서 파괴적으로 변하는 겁니다.”

그는 정신의학과 뇌과학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방심했다”며 우리 사회의 현재 상황에 대한 책임도 느낀다고 했다.

정신의학계 권위자로 ‘화병’을 세계 의학계에 소개하는 데 공헌한 그는 강원도 홍천 두메산골에 ‘힐리언스 선마을’을 세워 운영하고 있다. ‘의도된 불편함’을 표방하는 이곳엔 TV와 인터넷이 없으며 휴대전화에는 ‘서비스 지역이 아닙니다’라는 문구가 뜬다. 도시 생활의 스트레스와 독을 푸는 디톡스(해독) 관련 시설을 갖췄다. 이곳에서 그는 ‘촌장’으로 불린다.

“5년마다 화두를 정하고 그 주제에 관련된 연구를 합니다. 내년까지는 ‘건강’이고 2014년까지는 ‘창조성’으로 정했어요. 이 책은 ‘창조성’을 위한 준비운동인 셈입니다.”

홍천=전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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