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아직도 불법감청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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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통신의 자유는 사람이 인간답게 살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권리다.

그러나 아이로니컬하게도 사회가 발전하면 할수록 통신의 편리성은 증대되는 동시에 통신의 비밀은 침해받기 쉬워진다.

매체에 대한 감청 (監聽) 기술도 함께 발달해 얼마든지 대화내용을 엿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인의 권리를 중시하는 국가들은 수사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해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법률로 감청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를 보면 과연 우리에게 통신의 자유가 있는가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통신수단을 통한 대화가 사설업자의 불법영업대상이 되는가 하면 국가기관에 의해 함부로 감청되는 사례가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다.

얼마전 사설업자의 청탁을 받은 일선 경찰관이 마치 수사사건인 것처럼 꾸며 도청 (盜聽) 을 알선했다가 검찰에 적발되더니만 이번엔 경찰의 불법감청이 위험수위에 이르고 있다는 보도다.

조직폭력배 유착의혹이 있는 경찰관들의 핸드폰이 감청되고 탈법적인 감청요구로 통신회사들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는 것이다.

감청과 통화내용 조사요청 건수가 하루에도 수백건이 넘고 이중 상당수가 수사보다 정보수집용인 것같다는 한 통신회사 관계자의 말은 국가기관 편의에 따라 국민들의 자유가 얼마나 쉽게 침해되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수사기관도 감청이 필요할 때는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라 법원으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하고 긴급한 경우는 48시간내에 허가서를 받도록 돼 있다.

그러나 공문도 없이 전화 한 통화로 통신회사와 '협조' 가 이루어지고 있다니 보통 일이 아니다.

이런 일이 어디 경찰뿐이겠는가.

과거 행태를 보아 정보기관 등 다른 국가기관들의 불법 감청행위가 어느 정도일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실제로 전화도청이 아니면 샐 수 없는 얘기가 새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동안 국민들의 자유가 신장됐다고는 하지만 우리는 통신에 관한한 권위주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할 것이다.

여기에 한술 더떠 사설업자들의 도청까지 극성을 부리고 있으니 국민들의 사생활 보호는 말뿐인 셈이다.

국가기관의 불법 감청은 이를 감시하고 제재할 마땅한 수단이 없다.

그것이 아무리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법적 테두리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

국가 스스로 도덕성을 땅에 떨어뜨리는 행위는 즉각 중단돼야 한다.

그것은 사회기반을 무너뜨리는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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