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서울지하철]下. 시민편의 외면한 운영체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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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86년 아시안게임 개막식후 2호선 종합운동장역. 지하철을 기다리던 교통전문가 M박사는 한없이 승강장으로 몰려드는 승객을 보며 문득 몇년전 일본 국철에서 있었던 승강장 추락참사가 생각났다.

"큰 사고가 날지도 모른다" 는 생각이 든 그는 급히 역장을 찾아 '승강장이 더이상 승객을 수용할 수 없음' 을 설명했다.

M박사는 지금도 "역장이 순순히 협조해 승객을 통제할 수 있었다" 며 당시의 긴박감을 회상하곤 한다.

그후 10년. 아직도 서울지하철엔 승강장 수용능력을 생각하며 승객통제를 하는 역장이 별로 없다.

타고 내리는 승객이 한데 엉켜 달려오는 열차에 부닥쳐도, 또 떼밀려 선로에 떨어져도 승객책임일 뿐이다.

좁은 1호선 승강장,가파른 3, 4호선 계단등 서울지하철엔 위험시설이 많지만 빚에 허덕이는 당국은 보완할 엄두를 못낸다.

서울지하철은 또 정시성 (正時性)에도 문제가 있다.

지난해 수능시험날, 갑자기 눈.비가 오는 날, 하필이면 이럴 때마다 지하철.전철이 고장나는 경우가 많다.

운영시스템이 평소보다 많이 몰린 승객을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94년 이후 1기 지하철이 10분이상 지체한 운전장애는 모두 72건. 특히 갈아타는 역이 많은 2호선 장애로 서울교통은 수시로 마비되곤 했다.

외국에선 기관사를 드라이버 (driver)가 아닌 어텐던트 (attendant) 로 부른다.

어텐던트는 차량.전기.통신.신호등 지하철 하드웨어에 상당한 지식을 갖고 웬만한 고장은 스스로 응급조치를 할 수 있는 기술자다.

올해초 시민의 발을 2시간반동안 묶었던 지하철 5호선 영등포역 사고, 8월초 성수역 탈선사고때 기관사는 분명 어텐던트가 아니었다.

또 외국지하철에 비해 훨씬 넓은 역구내를 지하철공사는 주로 음식점.상가로 활용하고 있다.

때문에 지하공간은 더욱 오염되고 화재등 위험요소를 늘리고 있다.

문제가 되는 운영 소프트웨어는 이외에도 많다.

한 역에 똑같은 출구번호가 있는가 하면, 이름은 같은데 번호를 달리하는 역도 있다.

같은 노선에 색깔이 다른 열차가 달리기도 한다.

안내표지 부착위치도 일정하지 않고, 지하계단을 올라와 바로 볼 수 있으면 편할 안내표지는 출구계단에 와야 볼 수 있다.

차안에서도 짜증나는 일이 많다.

불필요한 방송, 잘못된 정보가 시민을 괴롭힌다.

"…하지 맙시다" 하는 훈계방송, "This station is…" 하는 영어방송은 수혜자보다 피해자가 많다.

또 요즘은 '지하철 = 구걸철' 이라는 말도 듣는다.

서울지하철 곳곳에 붙어있는 '독가스 광고' 는 정작 일본 동경지하철에는 없고, 툭하면 지하철창문.벽을 어지럽히는 '부착물' 에도 시민은 부담을 느낀다.

서울지하철은 이제 시민의 삶과 뗄 수 없는 시설이다.

불편하지 않고, 안전하며 정확한 서울지하철을 만들어 시민에게 다가가는 당국의 노력이 더없이 긴요한 때다.

음성직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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