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드 인 코리아]12.포항제철 철강제품…동남아서 일제 철의장막 뚫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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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외곽에 위치한 자동차부품회사인 IPPI사 (社) 의 프레스공장. 30도를 웃도는 기온과 기계가 내뿜는 열기 속에 철판을 눌러 상용차용 보닛을 찍어내는 '쿵' 하는 기계음이 요란하다.

10초 간격으로 프레스기가 작동하기 때문에 근로자들은 한눈팔 새가 없다.

자동차용 보닛에는 직각으로 꺾인 부분도 있고 둥근 부분도 있어 철강의 품질이 나쁘면 불량품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이때문에 자동차에 사용되는 철판은 강도가 높아야 하는 것은 물론 가공성이 뛰어나야 한다.

이 회사의 요하네스 레메유 (50) 구매및 생산부장은 "기술자나 근로자들로부터 철판의 품질에 대한 불평을 들어본 적이 없고 불량품도 거의 없다" 면서 "품질뿐 아니라 가격.선적기일 준수등에 대해 만족한다" 고 말한다.

이 공장에서 사용하는 철판은 한국의 포항제철이 만든 냉연강판이다.

레메유 부장은 "92년까지 일본의 신일본제철의 철판을 1백% 사용해왔으나 지금은 포철 제품의 비중이 절반 정도 된다" 고 말한다.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를 비롯한 동남아는 물론 '철강 원조국' 인 일본에서도 포철의 철강제품은 일본의 신일철 (新日鐵) 등과 당당히 맞서고 있다.

자동차.전자.법랑등 고급 철판이 사용되는 제품에서부터 공사장의 파이프에 이르기까지 포철 제품의 수요는 늘어만 간다.

싱가포르에 위치한 포철 동남아수출팀의 여완구 (呂完九) 부장은 "동남아의 웬만한 기업중 일본 자본이 안들어간 곳이 거의 없다" 면서 "이때문에 이들 기업들은 관행적으로 일본 제품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고 말한다.

이런 기업들에 우리나라에서 만든 철강제품을 팔기 위해서는 "사장에서 부사장.구매담당자.기술자에 이르기까지 단계별로 만나 설득하는 수 밖에 없다" 고 말한다.

포철 제품을 팔기 위해 문을 두드린 지 2년여만에 겨우 샘플을 납품하게 된 인도네시아의 모 자동차 회사가 대표적인 예다.

이 회사는 일본 제품을 1백% 사용하고 있다.

포철은 95년 중순 인도네시아인 구매담당부장을 노크했다.

"한번 만나만 달라" 며 거의 매일 통사정했다.

그는 "구매결정권은 일본 본사 소관사항" 이라며 면담 요청에 번번이 퇴짜를 놨다.

약6개월만에 겨우 만나긴 했지만 이번에는 "구매선을 바꾸려면 사장의 사인이 있어야 한다" 는 말밖에 듣지 못했다.

사장을 만나는데 다시 6개월이 흘렀다.

어렵사리 만난 인도네시아인 사장은 "구매선을 변경하려면 일본인 사장의 사인이 있어야 한다" 며 따돌렸다.

그러나 일본인 사장은 "회의중" , "일본본사 출장중" 이라며 피했다.

8개월뒤 샘플허가를 받았다.

꼬박 2년이 걸린 작업이었다.

일본시장 개척은 이보다 훨씬 힘들었다.

구매담당자를 만나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만나더라도 '간첩 접선하듯' 몰래 만나야 했다.

샘플이나 본제품을 납품할 때 제품이나 포장용기에 포철의 'P' 자 (字) 도 새기지 않아야 했다.

일본 철강업체들의 압력을 우려한 구매선에서 "우리와 거래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지 않게 해달라" 는 부탁을 해오기 일쑤였다.

이같은 철의 장막을 넘어 포철은 말레이시아 1백50여개 업체, 인도네시아에서는 2백여개 업체에 철강을 공급하고 있다.

싱가포르에 위치한 삼성아시아법인의 민영현 (閔泳賢) 과장은 "동남아에서 자신있게 팔 수 있는 대표적인 한국상품 중의 하나가 포철의 철강제품" 이라고 말한다.

포철은 지난해 동남아에 1백40만t (6억3천만달러) , 일본에 2백여만t (9억여달러) 을 수출했다.

8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두 지역을 공략해 왔으며, 매년 10%이상 물량이 늘고 있다.

포철의 주수출품은 열연.냉연강판. 90년대들어 고급강인 냉연제품 수출이 크게 늘면서 수익성도 높아지고 있다.

96년말 현재 포철의 주요 수출품인 냉연강판의 동남아시장 점유율은 19% (일본은 51%) 로 94년이후 20% 내외를 넘나들고 있다.

효성물산 이용준 (李溶濬) 자카르타 지점장은 "일본의 시장점유율이 신일본제철등 5대 메이커의 합계인 점을 감안하면 단일회사로는 포철이 선두권" 이라고 한다.

포철이 동남아시장에서 약진하게 된 배경은 무엇보다 품질. 말레이시아에 진출한 프레스업체인 동양정기 말레이시아 박종찬 (朴鐘贊) 현지법인장은 "철판을 프레스기로 눌러 부품을 만들때 찢어지거나 금이 가는 경우가 가끔 있지만, 포철 제품은 그런 적이 한번도 없었다" 고 말한다.

품질 못지않게 중요한 게 애프터서비스다.

㈜대우 이덕규 (李德揆) 자카르타 지사장은 "포철의 MR팀 (기술서비스 지원단) 이 주기적으로 수요업체들을 방문해 하자문제를 해결해준다" 고 말한다.

물론 포철이 뛰어넘어야 할 과제도 많다.

㈜선경 김경기 (金慶基) 콸라룸푸르 지사장은 "최근 많은 업체들이 동남아시장에 진출해 경쟁이 심화되고 있어 품질의 고부가가치화가 시급하다" 고 말한다.

특별취재팀 : 유규하 차장 (팀장.경제2부) , 박방주·유지상·신성식·윤석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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