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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일씨 사건'이런 점은…] 上. 대사관 직원 9명이라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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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오전 5시10분 외교통상부 국외테러대책본부 가동. 오전 8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 개최. 오후 3시15분 청와대 대책회의(비서실장 주재). 오후 4시 대테러 대책위(국무총리 대리 주재) 개최. 오후 10시 외교부.NSC 합동대책위 개최. 고 김선일씨의 피랍이 확인된 21일의 정부 대책회의 명세표다. 각급 회의가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이어졌지만 정작 김씨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는 알지 못했다.

외교부의 주무 부서인 재외국민영사국은 해외공관에서 관련 정보를 받지 못했다. 다음날인 22일 오후 10시. 노무현 대통령이 정부 합동대책회의에서 희망섞인 보고를 받았을 땐 이미 김씨는 숨져 있었다. 정부에 화색을 돌게 한 근거는 그 2시간30분여 전 협상 기한이 연장됐다는 알아라비야 방송의 자막이었다.

이틀 동안 대책회의를 주도한 부처는 외교부였다. 정부는 석방 교섭에서 관련 정보까지 외교부만 쳐다보고 있었다. 정보 수집.분석이 전문이 아닌 외교부로선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더 들어가면 재외국민 영사업무를 맡는 재외국민영사국과 지역국인 아중동국에 기댔다. 나라를 뒤흔든 테러인데도 대응은 통상적인 외교부의 재외국민 보호 차원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김선일씨 살해 사건은 국외 테러 대처 시스템을 도마에 올렸다.

먼저 소프트웨어의 문제다. 위험지역 국가엔 외교관 인원을 늘리는 유연성이 필요하다. 더구나 이라크엔 우리군 3000명이 더 파병되는 만큼 우리 국민이 테러 표적이 될 가능성은 상존한다. 미국이 3000여명 규모의 이라크 대사관을 개설하는 것을 참조할 만하다.

국무부 중심의 직원 900~1000명, 국방부 등 관련 부서 600~700명이 나가 있고, 나머지는 현지에서 채용하는 직원이다. 대사와 현지 직원을 포함해 한국 대사관의 전체 직원은 9명이다.

이들에게 파병 관련 협상을 비롯한 외교 현안 외에 테러 방지와 교민 안전까지 책임지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재외국민 테러.납치.실종 처리에 관한 대응 매뉴얼을 마련하는 것도 급하다. 그 필요성은 AP통신의 김씨 실종 문의에 대한 외교부 직원들의 대응에서도 드러난다.

무엇보다 평상시 해외 테러동향 파악, 대국민 홍보가 잘 돼야 한다. 특히 테러 정보 수집 강화와 관련 전문가 육성이 절실하다. 경희대 정진영 교수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해외정보 수집에 예산을 거의 다 쏟아붓는다"면서 "해외 정보기관과의 협조는 물론 독자적인 정보수집 능력과 분석 능력 강화가 발등의 불"이라고 지적한다.

또 다른 문제는 하드웨어다. 사안이 위중하면 곧바로 일원화된 범정부 차원의 대책위가 작동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경우 회의만 무성했지 정부 전체의 컨트롤 타워는 보이지 않았다. 김정원 세종대 석좌교수는 "해외에서의 잔혹한 테러가 빈발하고, 이것이 국민 심리에 미칠 영향을 감안하면 상시적인 테러대책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속 대응과 테러 예방을 위해서라는 것이다. 정부에는 국가 대테러활동 지침에 따라 국무총리 주재의 대테러 대책위가 있다. 그러나 이번에 제대로 작동했는 지는 의문이다

외교부 시스템도 문제다. 일반 영사업무에서 테러까지 외교부의 재외국민영사국이 모두 맡는 현 체제로는 유사시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국가안보 못지 않게 재외국민의 안보가 중요한 시대인 만큼 재외국민영사국을 확대 개편하거나 부서 내에 별도의 테러 관련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외교부의 경우 대테러 담당대사와 안보정책과가 테러 업무를 다루기는 하지만 대테러 정책과 관련한 대외협력이 주임무다.

오영환.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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