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도 너무하는' 국회 예산심의…예산 뻥튀기에 각당 한마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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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회의 예산 심의는 늘 겉으론 '삭감' , 속으론 '팽창' 의 형태를 띠어왔다.

그러나 올해의 경우는 "해도 너무한다" 는 소리가 곳곳에서 그치지 않고 있다.

우선 임기말을 맞은 'PK (부산.경남) 정권' 의 지역구 챙기기가 극성이라는 지적이다.

이 지역출신 의원들의 실력이 예산심의과정에서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는 것이다.

강경식 (姜慶植) 부총리의 '대통령지역 챙기기' 도 한몫 하는 인상이다.

올해 재정압박이 얼마나 심각한가는 15년만에 '마이너스 추가경정예산안' 이 처리됐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는 것. 3조5천억원 이상에 달하는 세수결함을 도저히 충당할 수 없자 결국 올해 본예산을 1조5천억원 삭감하는 추경예산안이 11일 국회본회의에서 통과된 뒤끝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당정협의→상임위 부별심사를 거치면서 내년 예산안은 눈덩이처럼 불어만 가고 있다.

정부안 자체에 'YS봐주기 눈치예산' 이 잡혀 있는데다 신한국당등과의 협의과정에서 '실력있는 의원' 과 '입당의원' 을 배려한 선심예산이 끼어들었다.

99년부터 착공키로 돼있었던 '5개 지방고속도로 건설사업' 은 건교위 위원들의 아우성으로 1년 앞당겨 내년부터 실시토록 변경됐다.

설계비만 일단 계상됐는데 이는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둔 여야의원들의 이해가 일치했기 때문이다.

◇ 정부원안및 당정협의 = 정부원안에 있는 부산 가덕도 신항만공사는 99년이나 돼야 실질적 공사가 가능하다.

공사장 주변의 어업권 보상이 그때 가서야 이뤄질수 있기 때문. 따라서 올해 9백억원, 내년 1천8백억원으로 배정된 예산은 대부분 집행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다.

"무조건 배정하고 보자" 는 정부의 심산인데 그래서 받아놓은 사업비를 '수협예탁' 이라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보관하고 있다.

예산의 당해년도 집행이라는 기본원칙이 처음부터 무너진 것이다.

예결위에서 '위법논란' 이 벌어지는 것도 이런 때문이다.

김해 경전철은 올해 예산으로 잡혔던 40억원조차 민자유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바람에 대부분 '불용액' 으로 처리돼 따가운 지적을 받은 사업. 그런데 이회창 (李會昌) 신한국당 총재의 측근인 김영일 (金榮馹) 의원이 내년에 94억원을 따낸 것이다.

당정협의를 통해서였다.

경주문화 엑스포엔 올해와 내년 합쳐 모두 1백50억원이 계상됐다.

광주광역시의 국제비엔날레에도 5년간 50억원의 국고지원이 있었을 뿐이다.

기초단체의 한해 행사에 1백50억원이 지원돼야 할 이유를 발견하기 어렵다는게 국회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춘천.강릉의 지역구 사업은 야당에서 탈당해 신한국당에 입당한 해당의원들을 봐주기 위한 것이라는게 정설처럼 돼 있다.

◇ 상임위 심의 = 건교위 회의실이 있는 국회 4층 복도. 내무부 관계자들이 답변서를 검토하고 있었다.

국민회의 H의원이 요구한 목포~보성간 경전철 사업비를 예산에 배정하지 않은 이유에 대한 설명서였다.

이 사업은 지난 88년 당시 경제기획원 조사에서 이미 타당성이 없는 것으로 결정된 사안이었다.

내무위에서 1백억원을 증액시킨 강릉역 현대화사업은 올해초 내무부에서 재경원에 배정을 요청했으나 재경원이 시급하지 않다는 판단에 따라 국고 배정을 하지 않기로 결정된 것. 그러나 내무위에서 국고지원액이 살아났다.

정부관계자들은 자민련을 탈당, 신한국당에 입당한 이 지역 H의원에 대한 배려라며 골치아프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건교위에서는 부산~울산, 청주~상주, 공주~서천, 군산~함양, 광주외곽의 5곳 고속도로 건설착공비로 2백50억원을 신설했다.

그러나 재경원 원안은 이 사업들이 예산배정 순위상 시급하지 않고 고속도로 사업의 경우 일단 사업을 시작하면 거액의 예산이 소요된다는 점에서 국고 배정을 하지 않기로 했었다.

문화체육공보위는 1백억원으로 책정돼 넘어온 국가주요시책광고비에 40억원을 증액시켰다.

상임위 관계자는 "어차피 내년 새정부가 들어서면 아무래도 정부 홍보가 더 필요하게 마련이라 예의 차원에서 증액시켜 준 것" 이라고 말했다.

문체위에서 신설한 지자체의 관광지 개발사업도 지역구 의원들의 로비 냄새가 나는 대목. 신안관광지.춘천구곡폭포관광지의 주차장시설비로 각각 6억원.2억원이 신설됐다.

문체위 관계자는 "결국 지자체가 추진하는 수십 개의 관광지 개발사업중 어느 것이 채택되는가는 지역구 의원의 로비력에 달린게 아니냐" 고 반문했다.

전영기.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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