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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S 한국경제]1.추락하는 대외 신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한국경제는 이대로 추락하는 것일까. '한강의 기적' 이라던 한국경제가 하루아침에 국제적인 천덕꾸러기 신세로 변하고 있다.

외국인 투자가들의 무제한 철수 회오리 속에 초유의 외환위기를 맞고 있다.

경제비상 시국이다.

그런데도 나라 안은 대선을 둘러싼 정치열풍에 휩싸여 정작 경제는 뒷전이다.

정부당국은 레임덕 현상속에 뒷짐만 지고 있다.

문제제기조차 안되고 있는 상황이다.

과연 지금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가.

당면과제에 대한 심층진단과 활로모색을 위한 중지를 모아본다.

11일 아침 김포공항에 도착한 박영철 (朴英哲) 금융연구원장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뉴욕등에서 미국.일본의 금융관계자들을 만나고 오는 길이었다.

"정말 큰일이다.

국제 금융시장에 만연하고 있는 한국경제에 대한 위기감은 예상보다 훨씬 심각하다.

정부통계조차 믿으려들지 않으니…. "

최근 외국 언론들이 일제히 한국경제를 매도하는 것은 이같은 분위기의 반영이다.

소위 말하는 '헤드라인 리스크' 마저 가중되고 한국 경제의 국제신용도를 더욱 떨어뜨리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외환보유고 통계도 못믿겠단다.

멕시코와 태국도 아무 문제없다고 큰소리 쳤지만 결국은 달러가 바닥이더라는 불신감을 한국 경제에도 그대로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외국인 투자가들이 한국을 떠나는 것은 누적된 불신 탓이다.

정부나 은행 말도 신뢰할 수 없다. " (쌍용투자증권 스티브 마빈 이사)

"한국정부의 낙관론은 관심이 없다.

기업의 파산위험, 통화불안현상이 뻔하지 않은가. " (파이낸셜 타임스 존 버튼 특파원)

문제는 지표가 아니라 눈에 보이는 현실이다.

기업의 부도가 시차를 두고 금융기관의 부실로 이어지고, 이것이 다시 해외 신인도를 추락시켜 해외차입이 더 어려워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기업과 금융기관 사이에는 방화벽 (防火壁) 이 없다.

불이 옆집으로까지 옮겨 붙고 있는데 물을 못구해 허둥거리고 있는 형국이다.

종금사 문제는 당장 발등의 불이다.

종금사 자금담당 실무자는 부족한 달러를 메우느라 밤낮이 없다.

금리가 얼마건 상관없다.

서울에서 못구하는 돈을 홍콩.싱가포르.런던.뉴욕등 세계를 한바퀴 뺑도는 일을 매일 밤 반복하고 있다.

한보.기아등 대기업들에뿐만 아니라 태국.인도네시아등 동남아에서도 잔뜩 물렸다.

30개 종금사중 6~7개는 자력 갱생이 불가능한 상태. 외국인 투자가들이 오히려 이들의 한계상항을 속속들이 더 파악하고 있다.

쉬쉬하는 바람에 불신만 조장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나 금융기관 당사자들은 아무런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금융시스템이 결딴날 상황인데도 수습의 노력이나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국제 금융시장이 한국을 불신하는 문제의 핵심이다.

"이렇게 경제가 혼란에 빠지고 있는데도 한국의 정치인이나 정부 당국은 무엇 하는지 모르겠다.

다른 나라처럼 대통령이 직접 국제 금융시장에 나가 신용 회복을 호소해도 어려울 판에 모두 선거에만 정신이 팔려있지 않은가. "

익명을 요구한 외국인 회사 지점장의 비판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국제적인 신용조사기관들이 조만간 한국을 또 찾을 예정이다.

그간의 신용등급 하향조정으로 불충분하다는 판단인 것같다" 고 우려했다.

만약 또 한차례 국가 신용등급이 내려가면 금융기관의 해외차입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서울대 정운찬 (鄭雲燦) 교수는 "해외신용 회복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 임을 강조하면서 해결방안으로 "적자재정을 감수하더라도 국채를 과감히 발행해 금융기관들의 부실채권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난국을 풀 수 있다" 고 주장한다.

서강대 조윤제 (趙潤濟) 교수도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절실하다" 고 강조했다.

박영철 금융연구원장은 "국제신용도의 추락을 더 이상 방치해선 안된다" 고 강조하면서 해결책으로 "우선적으로 정부가 부실금융기관과 부실채권의 정리에 과감히 나서고 정부통계의 신뢰를 높이는데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할것" 이라고 말했다.

잘못된 것은 솔직히 털어놓고 저질러진 잘못들에 대해선 국민들이 부담해 나가는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보여줘야 더 이상의 한국경제 신용 추락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남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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