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낭비 ‘유령공항’ 왜 양산됐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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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 우후죽순으로 들어선 지방공항은 정치권과 지역여론의 합작품이다. 정확한 수요예측을 통해 신공항 건설을 추진해야 하는데 정치권의 논리에 휩쓸려 견제를 제대로 못한 국토해양부의 책임도 크다.

대표적인 것이 울진공항이다. 울진공항은 2001년 당시 김대중 정부의 실세로 꼽히던 김중권 대통령 비서실장이 공항 건설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한국교통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하루 이용객이 50명에 불과할 것이란 수요예측 보고서를 냈지만 정치권과 정부가 막무가내로 밀어붙였다”고 말했다.

또 1998년 건설 방침이 확정돼 1450억원의 예산 중 480억원이 투입된 김제공항은 당시 전북의 실세들이 건설과정에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0년 380억원을 들여 증축을 추진하던 예천공항은 이용객 감소로 예산만 낭비한 채 아예 폐쇄됐다. 3500억원이 들어간 양양공항은 정부의 수요예측과 위치선정이 실패한 경우다. 정부는 96년 통일시대를 대비해 영동지역의 거점공항 육성이라는 명분 아래 양양공항 건설을 결정했다.

그 이후 국토부 내부에서조차 “수요예측이 잘못됐고 영동지역 중남부의 접근권이 떨어져 위치 선정이 잘못됐다”고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을 정도다.

국토부의 한 관계자는 “지방공항에 수천억원이 들어갔지만 10년도 안 돼 뒤처리에 골몰하고 있다”며 “당시 선배들이 목을 내놓고라도 반대했어야 하는데 아쉽다”고 토로했다.

박용훈 교통문화운동 대표는 “수천억원의 예산을 낭비했지만 손실을 만회할 방법이 전혀 안 보인다”며 “앞으로는 정부의 대규모 건설공사에는 반드시 정책 실명제를 도입해 담당 공무원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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