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우체통이 쓰레기통인가…쓰레기통 없애면서 시민정신 실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9일 오후 서울종로구명륜동4가 H냉면집앞 대학로 거리. 광화문우체국 집배원 정순호 (鄭淳鎬.52) 씨가 우체통을 열자 빈 깡통.종이컵.휴지.신문지.우유병등 각종 쓰레기가 무더기로 쏟아졌다.

60여통의 편지사이로 쓰레기가 뒤섞여 우체통인지 쓰레기통인지 구분이 안갈 정도였다.

이곳에서 종로5가쪽으로 3백여m 떨어진 방송대 뒷골목에 있는 우체통. 이번에는 담배꽁초.스타킹.극장 팸플릿.컵라면 용기등 더러운 쓰레기가 우편물 분량만큼 나왔다.

"이 정도면 그래도 나은 편이지요. 불씨가 남은 담배꽁초를 집어넣어 편지에 불이 붙거나 음료캔에서 물이 줄줄 흐르는 바람에 주소를 적은 글씨 잉크가 번져 배달을 못하는 경우도 있어요. " 20여년째 집배원으로 일하고 있다는 鄭씨는 지난해부터 대학로에 쓰레기통이 없어지자 주로 밤중에 행인들이 쓰레기를 마구 집어넣는 바람에 우편물 수거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말했다.

밤중에 젊은이들과 취객이 북적거리는 서울신촌이나 강남역 네거리 일대도 사정은 마찬가지. 이때문에 집배원들은 아예 쓰레기 수거 봉투를 갖고 다닌다.

강남우체국 조기연 (趙起衍.36) 집배원은 "강남역 주변 우체통에는 심지어 여성용 팬티나 깨진 소주병까지 들어있다" 며 "때로는 청소미화원이 됐다는 착각이 들 정도" 라고 말했다.

현재 서울시내에 설치된 우체통은 모두 4천3백여개. 집배원들은 하루 두차례씩 우편물을 수집하지만 쓰레기 때문에 근무시간이 배로 늘었다고 울상이다.

이처럼 엉뚱하게 쓰레기가 우체통에 투입되는 현상은 상당수 자치단체들이 종량제 봉투를 사용하지 않은 쓰레기 불법투기나 화재를 막기 위해 길거리 쓰레기통을 줄인 것도 한 원인이다.

지난해 종로1~6가 일대의 쓰레기통을 모두 없앤 종로구청 관계자는 "이는 쓰레기통을 늘린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닌 시민의식 문제며 앞으로 주택가 쓰레기통도 없앨 계획" 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우체국들은 자치단체들이 우체통과 근접한 곳에는 쓰레기통을 두어야 한다" 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승무 (李承務) 연세대 명예교수는 "선진 외국도 거리 휴지통을 없애는 추세지만 시민들이 작은 불편을 감수한다는 자세로 해결하고 있다.

누구든지 피해자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홍보.교육.시민 고발을 통해 도덕성을 길러나가야 한다" 고 말했다.

양영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