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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생금융, 획기적인 규제 강화가 필요하다

중앙선데이

입력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1998년 러시아가 금융위기에 빠지면서 미국의 대규모 헤지펀드 LTCM(Long-Term Capital Management)이 파산위기에 빠졌다. 워낙 대규모 펀드이기에 LTCM이 파산하면 미국 금융시스템이 무너질 수 있다는 판단하에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12개 채권 은행에 부채의 출자 전환을 강요해 사태를 수습했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LTCM이 사용하던 파생상품 평가 모델이 ‘세계 최고’였다는 점이다. 이 모델을 만든 사람은 그 회사의 파트너로 있던 로버트 머튼과 마이런 숄스라는 두 경제학자였다. 이들은 바로 한 해 전인 97년에 ‘파생상품 가치 결정에 대한 공헌’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사람들이다. 바로 그것을 가지고 노벨상을 탄 사람들도 제대로 이해 못하는 것이 파생상품이라는 말이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숄스 교수가 LTCM의 실패를 딛고 일어나 99년에 세운 PGAM (Platinum Grove Asset Management)이라는 펀드가 지난해 가을에 또 망했다는 것이다. 한 번은 실수라고 한다 하더라도 파생상품 모델을 갖고 노벨상을 탄 사람이 두 번 연속 파산한다면 과연 경제학 모델이 금융시장의 이해에 도움이 되는가를 의심해 볼 만하다.

이번 금융 위기도 그렇다. 머리 좋다는 사람들이 다 모여서 수백만 달러, 심지어 수천만 달러의 보수를 받으면서 온갖 선진 기법을 동원해 운영을 했다는데, 그 결과를 보면 참담하기 짝이 없다. 왜 그런 것인가? 기본적으로 너무 복잡하고 이해하기 힘든 상품이 많이 나오다 보니 금융계 종사자들도 자기가 하는 일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당사자들이 이럴진대 그들을 규제하는 사람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결국 우리가 인정할 것은 지난 30여 년간의 금융자유화가 금융을 너무 복잡하게 만들어 인간이 가진 제한된 지능을 벗어났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지금 필요한 것은 규제를 통해 금융체계의 복잡성을 근본적으로 줄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필요한 것은 복잡한 파생상품의 거래를 금지하는 것이다. 얼핏 들으면 극단주의적인 주장으로 들리겠지만, 사실 이런 일은 무수히 일어나고 있다. 나라마다 의약품의 안전도를 검사해 그 기준을 통과하지 못한 약은 팔지 못하게 한다. 자동차도 일정한 안전 검사와 오염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면 판매를 금지한다. 그렇다면 왜 금융상품은 안전도가 검증되지 않아도 팔 수 있어야 하는가? 의약품이나 자동차의 경우와 같이 금융 상품도 그것의 장기적인 사회적 편익이 사회적 비용을 능가한다는 것이 확실히 증명되지 않는 한 거래되지 못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금융의 복잡성을 줄이는 데 더해 또 필요한 것은, 이번에 고객에게 유리한 대로 엉터리 신용등급을 매겨 문제가 된 신용평가 기관들을 평가 대상 업체로부터 돈을 받지 않는 공공기관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약품의 안전성을 검사하는 사람들이 제약회사에서 월급을 받지 않는 것과 같이 자명한 원리다.

이에 더해 미국·일본·유럽 국가 등 자국 통화가 경화(hard currency)가 아닌 나라들은 자본 통제를 해야 한다. 투기성 자본의 규모가 너무 커졌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서너 손가락 안에 꼽히는 2000억 달러의 외환보유액을 쌓아 놓고도 외환위기가 또 일어날까 벌벌 떤다. 2000억 달러라고 해 봤자 이번 금융 위기가 발생하기 이전 하루 세계 외환 거래량 2조 달러의 10분의 1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금융기관의 자산을 시가로 평가하는 ‘시장 회계(market-to-market)’ 규칙도 바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경기 상승이 자산 가격을 올리고, 그것이 금융기관의 이윤과 자기자본을 늘려 다시 대출을 늘리고, 그것이 또 다시 자산 가격이 올라 경기가 증폭되는 현상이 일어난다(경기하강의 경우는 그 반대).

위에서 말한 많은 개혁은 물론 강대국들의 동의 없이 우리나라 단독으로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주요 20개국(G20)에 합류한 이 기회를 이용해 개혁의 필요성을 설파해야 한다. 우리나라야말로 경화를 발행할 수 있는 선진국들이나 아직 자본 통제를 사용하는 중국·인도 등 후진국들과 달리 현재의 국제금융 체제에서 가장 고달픈 처지에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장하준 교수 케임브리지대·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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