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리브라이히, 10번을 불려나오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8면

27일 오후 경남 통영시 통영시민문화회관 대극장. 뮌헨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현악기 주자 중 네 명이 객석으로 내려왔다. 첼로·비올라는 객석 1층의 문 앞에, 바이올린 두대는 2층 맨 앞줄에 자리했다. 나머지 연주자 10여명은 무대 위에 남아, 연주자 전원이 객석을 감싸는 모양이 됐다. 작곡가 김지향의 작품 ‘콘체르토 그로소(Concerto Grosso, 합주 협주곡)’를 연주하기 위해서다.

개막 연주를 지휘한 알렉산더 리브라이히(41). 27, 28일 각각 아시아·유럽 작곡가의 작품을 연주해 ‘동과 서’라는 올해 음악제의 주제를 완성했다. [통영국제음악제 제공]


◆동양과 서양, 현대와 역사 공존의 음악제=독일 연주자들은 한국 작곡가의 아이디어를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콘체르토 그로소’는 적은 수의 악기군과 많은 수의 그룹이 함께 연주하는, 바로크 시대에 발전된 협주곡 형식이다. 김지향은 이러한 서양의 양식에 동양의 색채와 현대적인 음향의 실험을 더했다. 첼로와 비올라가 한음씩 주고받으며 시작된 음악이 점점 거대한 스테레오 음향으로 발전해갔다.

이처럼 제8회 통영국제음악제의 개막 연주에는 동양과 서양, 현대와 역사가 공존했다. 뮌헨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알렉산더 리브라이히(41)는 중앙 아시아와 한·중·일의 작곡가가 2007~2008년 작곡한 작품을 골라냈다. 그들의 음악 속에는 예루살렘 시장의 모습과 중국어의 독특한 성조가 숨어있었다. 마지막은 윤이상(1917~95)의 실내교향곡 1번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현대 음악에 대한 청중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이들은 연주를 마치고 들어간 리브라이히를 무대로 열 차례나 다시 불러냈다. 리브라이히는 두 곡을 앙코르로 연주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음악회장의 열기가 더해졌다.

◆푸른 눈의 ‘통영 사령탑’=알렉산더 리브라이히는 주목받는 현대 음악 지휘자다. 그는 2011년부터 통영국제음악제의 예술감독을 맡는다. 이 음악제 최초의 외국인 예술감독이다.

개막 연주 이튿날, 리브라이히는 “작곡가 윤이상의 고향 통영에 온 것이 마음 설레인다”고 표현했다. “다른 어떤 작곡가보다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한 윤이상에 대한 존경심으로 이 자리를 맡게됐다”는 것이다. 그는 2005년 독일 학술교류처 후원으로 평양의 음악대학 교수로 일한 경력이 있다. 2002년에는 독일청소년교향악단을 이끌고 평양·서울에서 차례로 브루크너 교향곡 8번을 연주하기도 했다. ‘한반도와 음악’이라는 주제가 늘 그의 마음에 있었기 때문이다. 평양에서는 윤이상 선생의 미망인 이수자(82)여사를 매일 만나 윤이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번 연주에서 한국 등 아시아의 음악을 훌륭하게 연주한 그는 “하이든을 한국인보다 독일인이 더 잘 연주하는 것이 아니듯, 동양의 음악 또한 유럽의 연주단체가 수준높게 표현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윤이상 선생이 살아있다면 이 음악제를 어떻게 꾸릴지 늘 염두에 두겠다”는 것이 2011년 푸른 바다 통영의 ‘사령탑’이 될 리브라이히의 포부다.

총 17번의 음악회가 열리는 올해의 통영국제음악제는 4월 2일까지 계속된다.

통영=김호정 기자

◆통영국제음악제=작곡가 윤이상의 고향을 ‘아시아의 음악 메카’로 만드는 계획 아래 2002년 ‘서주와 추상’이라는 부제로 시작했다. 세계 각국의 연주자를 초청해 10여차례의 음악회를 열며, 축제 기간동안 통영 시내 곳곳에서 아마추어 연주자들이 참여하는 프린지 페스티벌이 함께 진행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