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글로벌 증시 상승세 … 그러나 봄은 먼 곳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7면

“제비 한 마리가 왔다고 해서 봄이 온 것은 아니다.” 요즘 금융시장에 대한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일단 26일 외환시장과 증시에선 봄 기운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원화 가치는 전날보다 32.5원 오른 달러당 1330.5원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 1월 7일(1292.5원) 이후 가장 높다. 또 코스피지수는 올 들어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8일째 이어진 외국인 순매수 덕에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14.78포인트(1.2%) 오른 1243.8로 거래를 마쳤다.

그러나 민간 경제연구소와 증권사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본지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조심스러운 반응이 대다수였다. 금융시장이 큰 고비를 넘겼다는 해석이 나왔으나 곧장 회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단서가 붙었다.

◆분위기 좋아진 외환시장=경상수지 흑자를 전제로 전문가들은 원화 가치가 달러화에 대해 상반기에는 1300원대, 하반기에는 1200원대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2월과 3월 연속 무역수지 흑자가 이어졌고, 미국 정부의 대규모 부실자산 처리 계획(PPIP)과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국채 직매입 계획 등이 국내 외환시장 안정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풀이됐다. 미국의 연이은 대규모 자금공급 계획은 달러화의 남발로 받아들여져 세계 주요 통화에 대해 달러 가치가 일제히 약세를 보였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최근의 급속한 원화 가치 상승이 지속되기는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원화 가치는 이달 들어 26일까지 15.2% 뛰어올랐다.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고, 실물경기 회복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태에서 지속적인 원화 가치 상승은 어렵다는 해석이다. 올 들어 크게 오른 국제 유가가 큰 변수라는 지적도 나왔다. 고유선 대우증권 수석연구위원은 “유가가 배럴당 70~80달러까지 오르면 무역수지가 악화되고, 외환시장이 또다시 불안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원화 가치가 더 이상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이종우 HMC증권 리서치 헤드는 “원화 가치가 지금보다 더 떨어지는 일은 없을 것 같다”며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완화되면서 달러화는 추세적으로 약세로 돌아섰다”고 말했다.

<그래픽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주가 상승엔 한계=주가지수가 제한된 울타리 안에서 등락을 거듭할 뿐, 추세적으로 상승세를 이어가기는 힘들 것이란 전망이 압도적이었다. 최근의 상승세는 경기가 더 이상 나빠지지 않을 것이란 기대로 인한 반등일 뿐이라는 해석이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상반기 주가지수 고점을 1300선, 저점은 1000선으로 각각 제시했다. 하반기에는 1500선까지 오를 것이란 전망도 일부 있다.

역시 실물경기가 주가지수의 걸림돌이 될 것이란 분석이 많았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실물경기가 저점에서 반등은 할 수는 있지만 반등의 힘이 약하기 때문에 주가가 크게 오르기는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추세적인 상승은 힘들더라도 저점이 종전보다 높아졌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구희진 대신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주가지수 1000선이 무너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주요 산업의 재고조정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고, 앞으로는 경기 회복을 염두에 둔 재고 쌓기가 시작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이날 증시에선 하이닉스반도체가 낸드플래시 공장 가동률 100%에 힘입어 상한가를 기록했고, 삼성전자도 강세를 보였다. 반도체 수요가 살아난다는 전망도 확산되고 있다.

◆미국 경제 불안 여전=지난달 미국의 기존 주택 및 신규 주택 판매 지표가 개선되면서 미 경기 바닥에 대한 기대가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복잡하게 쌓인 미국의 부실자산이 쉽게 해소될 것이란 기대는 성급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윤세욱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신용카드 부실은 아직 거론되지도 않았다”며 “잠재 악재가 아직 많은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최근의 주택경기 지표가 좋아진 것은 과도한 하락에 따른 일시적인 반등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은 “지난해 2월 주택경기가 워낙 나쁜 데 따른 기저효과 덕에 2월 지표가 좋게 나왔다”며 “아직 재고 물량이 많다”고 설명했다.

국내 실물경기는 상반기 저점을 찍겠지만 회복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됐다. 내년 중 회복을 내다보는 전문가가 대다수였다. 즉 내년까지는 경기가 L자를 그릴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금융시장 불안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실물경기가 강력한 복원력을 갖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대신증권 구 센터장은 “각국 정부가 제공한 링거 주사 덕에 한계기업들이 연명하고 있다”며 “이들에 대한 강력한 구조조정이 이뤄져야만 실물경기가 본격적으로 회복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희성·김준현·김원배·조민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