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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발사체 … 우리는 안 만드나 못 만드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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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발사체로 추정되는 로켓을 발사대에 장착함으로써 로켓 발사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북한은 오래 전부터 발사체를 개발해 왔고, 그만큼 성공에 대한 자신감도 큰 것 같다. 남한의 연구기관들은 상당히 당혹스러운 표정이다. 국내 개발이 계속 지연되면서 성공에 대한 확신이 줄어들었고, 올 2월 이란의 인공위성 발사와 북한의 로켓 발사 예고로 우주발사체 자력 발사 세계 10위권 진입마저 무산될 위기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우주발사체는 장기간의 계획과 막대한 투자가 있어야 개발할 수 있고, 우주 선진국들의 기술 이전 기피와 규제로 후발국들이 신규 진입하기도 극히 어렵다. 그렇다 하더라도 세계 13위 경제대국인 우리가 어째서 고난의 행군을 겪은 최빈국 북한보다 뒤처졌을까? 못 만드는 것인가, 안 만드는 것인가? 발사체 기술 수준으로 볼 때 북한이 3류 대학 졸업반이면 남한은 명문대를 노리는 대입 준비생이다. 아직은 못 만드는 것이다.

미국과 러시아(옛 소련)는 독일 기술을 발전시켜 자력으로 우주발사체를 개발했고, 현재까지 강대한 개발 능력을 보유하면서 관련 시장을 선점하고 있다. 일본과 중국 등은 1987년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 발효 이전에 외국 기술을 개량해 발사체를 개발했고, 후발국인 인도와 이스라엘 등은 다양한 규제 속에서 자체 개발과 일부 기술 도입의 지속적인 반복을 통해 발사체를 개발했다.

우주발사체 개발에는 추력이 가장 큰 1단 로켓을 어떻게 확보하는가가 관건이고, 국제 규제도 여기에 집중된다. 일본도 69년 체결한 미·일 우주협력협정으로 미제 로켓 1단을 도입하고, 여기에 자체 개발한 액체로켓 2단을 얹었으나 미국이 원래 군사용으로 개발된 자국 엔진의 상세조사를 허락하지 않아 시스템 통합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북한은 60~70년대 소련과 중국에서 도입한 군용 액체로켓을 지속적으로 개량해 발사체를 개발했다. 군사력을 중시한 강력한 지도통제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북한 측 보도에 의하면 조선우주공간기술위원회 주도로 80년대에 우주발사용 3단로켓을 개발하고, 90년대에는 발사장 건설을 포함한 위성 발사 능력을 자력으로 갖추었다고 한다.


북한의 발사체는 군용 노동미사일 4개를 엮은 1단과 노동미사일 1개인 2단, 단거리 고체연료 미사일을 개량한 3단으로 구성됐다고 한다. 이는 북한의 발사체 개발이 최근 실험한 핵무기의 장거리 투발(投發) 능력을 갖추기 위한 것이라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보유 인공위성과 운용 경험이 없는 북한이 한 번 발사에 수천억원이 들어가는 대형 로켓을 개발한다는 것도 의문이다.

한국은 80년대까지 군용 고체로켓을 개발하다가 90년대에 들어와서야 민수용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96년에는 과학기술처 주도로 액체로켓 개발이 포함된 우주개발 중장기기본계획이 수립됐다. 기본형인 액체연료 과학로켓(KSR-III)을 만들고, 이를 토대로 우주발사체(KSLV-I)를 개발해 2010년까지 100㎏급 소형 위성(STSAT-2)을 궤도에 올린다는 것이었다. KSR-III는 2002년 말 성공적으로 발사됐다.

러나 이 계획은 98년 북한이 대포동 1호를 발사하면서 크게 바뀌었다. 예산을 대폭 늘려 KSLV-I 개발을 2005년으로 앞당기고, 2010년에는 1t급 상용위성 탑재가 가능한 우주발사체(KSLV-II)를 개발한다는 것이다. 2001년 MTCR 가입과 2004년 한·러 우주기술협력협정 체결을 계기로 개발 방식도 변화됐다. 러시아 흐루니체프사의 대추력 발사체와 기술을 도입해 1단을 만들고, 여기에 국내에서 개발한 2단을 얹게 된 것이다.

당시 미국이 대형 발사체 기술이전을 극력 회피했으므로, 경제난을 겪던 러시아에서 기술을 도입한 것은 시의적절했다. 이 때문에 2005년 발사 계획이 2007년으로 연기되긴 했지만 첨단 기술이 들어간 대추력 발사체와 관련 기술을 염가에 확보한다는 점이 돋보였다. 그러나 기술 도입을 통한 우주발사체 개발에는 각종 제약과 보이지 않는 규제들이 개입한다는 것이 곧 입증됐다.

2004년부터 양국 기술자들의 시스템 공동설계가 시작됐으나 한·러우주기술보호협정(TSA) 체결이 늦어지면서 상세설계가 지연됐다. 미국의 개입과 경제 형편이 좋아진 러시아의 소극적 태도가 원인이었다고 한다. 결국 2006년 TSA가 체결됐고, 발사 계획은 2008년으로 연기됐다. 최근에는 중국 쓰촨성 지진으로 중국산 부품 수입이 지연되면서, 또다시 2009년으로 수정됐다.

올해 발사 일정도 아직 발표되지 않고 있다. 아마도 일본이 개발 초기에 미국의 자국산 엔진 상세조사 불허로 어려움을 겪었던 것처럼 공식적으로 언급하기 어려운 상황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주변국에서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함께 남한의 위성 발사도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결국 자체 개발 역량이 부족해 외국 기술에 의존하다 보니 원래 계획이 크게 어긋나고 말았다.

한국산업연구원 발표에 의하면 KSLV-I의 발사 성공으로 얻을 수 있는 직간접적 경제효과가 약 3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있어 우주발사체 개발은 경제적 목적을 넘어 미래 전장의 승패를 좌우할 국가안보 기반을 자주적으로 구축한다는 의미가 있다. 북한 전역을 감시하고 전력을 투사할 수 있는 위성들을 우리의 계획에 따라 궤도에 올릴 수 있는 것이다. 이는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을 상대하는 데 더 없이 긴요하고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다만, 현재로서는 불필요한 논란을 피하면서 세계적 수준의 발사체 개발 능력을 확보하는 데 주력할 필요가 있다. 향후 추진될 실용위성 발사체(KSLV-II) 개발로 이를 입증하면서, 핵심 기술 확보에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 그림=김회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