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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일, 이라크 애인 부모 상견례 앞두고 피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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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일이는 이슬람 문화를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참살입니까."

김선일 씨가 죽은 후 충격과 슬픔에 잠겨 인생의 허무함과 친구에 대한 보고픔을 삼켜야만 했던 친구 심성대 씨(35.영어강사)와 한국외국어대 아랍어과 학번 선배였던 조모 씨(31). 김선일 씨와 가장 절친했던 두 사람은 24일 밤 서울 광진구 광장동에 위치한 장로회신학대학 캠퍼스에서 일간스포츠(IS)와 단독으로 만났다.

김선일 씨와 고등학교 친구였던 심 씨는 이라크로 떠났던 김선일 씨와 이메일을 주고받았고, 전화 통화까지 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미래 청사진을 펼쳤던 관계였다. 그는 기자의 끈질긴 설득 끝에 선일이가 왜 이라크로 갔으며, 또 선일이가 꿈꿨던 미래에 대해 소상히 밝혔다. 그는 지금도 선일이의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했다.

■ 선일씨의 꿈은 기독교 목회자

"선일이는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이라크에 갔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싸늘한 시신이 됐으니." 그는 선일이가 싸늘한 시신이 돼 돌아올 줄 알았다면 그를 끝까지 이라크로 가지 못하게 했을 것인데 '선일아 미안하다'며 고개를 떨궜다.

▶ 광화문 교보빌딩 앞 거리에 설치된 김선 일씨 추모 분향소에 시민들이 바친 꽃들이 쌓여 있다.

"선일이의 꿈은 기독교 목회자였습니다. 선일이는 90년도부터는 이슬람권 선교 쪽으로 인생의 목표를 조금씩 바꿨고, 그 때문에 대전 침례신학대학 대학원을 한 학기만에 휴학하고, 2000년 한국외국어대학 아랍어과로 진학했습니다."

그는 "선일이는 정말 열심히 살았다"고 했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학교 어학실에서 살다시피했다. 그는 "통역대학원으로 진학하려던 선일이는 지난해 '가나무역'을 통해 이라크로 가는 것을 아랍어와 문화를 가장 빨리 배우고 이해할 수 있는 기회로 여겼고 꿈을 실현하기 위해 주저없이 떠났다"고 밝혔다.

■ 이라크 여성과 결혼할 생각

심성대 씨는 "선일이의 '이슬람 사랑'은 이라크 여성과 결혼할 구체적인 계획까지 세웠고, 내게 결혼할 이라크 여인의 사진까지 보내주었다"고 했다. "선일이가 납치되기 하루 전인 5월 30일 보내온 마지막 이메일에는 24세된 이라크 여성과 결혼해 평생 이슬람 국가에 살고 싶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선일이는 '다음주(6월 초로 추정)에 여자친구의 부모님을 만나기로 했다' '가슴이 두근두근거리고 떨린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선일이는 그 다음날 이라크 무장단체에 피랍되고 말았다"며 안타까워했다.

선일 씨가 마음에 두었던 이라크 여성은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으며 이 조건으로 미군 PX에 취직, 선일 씨를 만나게 됐다.

■ 이라크를 정말로 좋아한 선일 씨

심성대 씨는 "선일이는 정말 이라크인들을 좋아했고 무척 친하게 지냈던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라크인들과 아주 친근한 표정으로 찍은 사진들을 수차례 보내왔다. 그 이라크인들이 선일이를 죽일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고 침통한 목소리로 말한 그는 또 "선일이가 이라크에서 1년간 일하며 2500만원을 모았다"고 했다. "선일이는 그 돈을 내게 보내 '2000만원짜리 전세를 구해달라'고 부탁했는데 선일이가 죽는 바람에 돈을 송금받지 못했다. 그 돈은 현재 누가 보관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친구에 따르면 선일씨는 이 전셋집에서 신혼생활(이라크 여성)을 할 뜻을 밝혔다고 한다.

그는 "억울하게 죽은 선일이를 위해 기도하며 넋을 달래주고 싶다"면서 "언젠가 저 세상에서 선일이를 만나면 이승에서 못다한 진한 우정을 다시 한번 나누고 싶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박동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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