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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그린백'과의 전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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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또 그린백을 발행하는 모양이군. " 재정상의 문제나 금융제도의 방만함을 이야기할 때 경제학자들이 곧잘 비아냥거리는 말이다.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2년 미국 정부가 10억달러에 달한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의회의 승인을 얻어 새 지폐를 발행했던 일을 빗댄 말이다.

전혀 아무런 계산이나 대책없이 두차례에 걸쳐 6억달러를 발행함으로써 '인플레이션에다 기름을 부어넣은 꼴' 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때만들어진 화폐의 뒷면이 녹색의 잉크로 인쇄됐다 해서 '그린백' 이라는 역사적 명칭을 얻게 됐는데, 발행하기까지의 과정이 너무나도 주먹구구식이어서 금융과 재정에 관한한 아직도 '악의 상징' 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1928년 다시 새로운 달러 화폐를 만들게 됐을 때 도안 (圖案) 과 색깔을 바꿔야 한다는 일부의 강력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계속 녹색을 유지하게 된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당시 녹색 안료가 다른 안료에 비해 훨씬 싸고 대량구입할 수 있었다는 점, 화학적으로 내구성이 강할 뿐만 아니라 인쇄효과도 좋고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색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그래서달러 화폐는 아직도 '그린백' 으로 불리지만 처음 발행됐을 때와 지금의 이미지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다.

세계 모든 나라에서 공용화폐처럼 쓰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화폐가치의 척도를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한데 '그린백' 을 '악의 상징' 으로 받아들이게 한 것은 남북전쟁이었고,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화폐로 등장하게 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이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미국이 채무국에서 일약 채권국으로 탈바꿈한 것도, 세계 통화의 중심이었던 영국의 파운드화를 몰아내고 '그린백' 이 안방차지를 하게 된 것도 모두가 제1차 세계대전의 영향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세계 여러 나라들은 마치 전쟁을 치르듯 달러화의 공세를 어떻게 막아내느냐에 골머리를 앓기 일쑤다.

우선은 국민들의 불안심리를 안정시키는게 최우선 과제라고 한다.

이번의 '환 (換) 전쟁' 에서 정부는 달러는 풀고 투기는 묶는 양면공세를 펼치리라 한다.

이 또한 '전쟁' 이라면 '지피지기 (知彼知己) 라야 백전백승' 이라는데 우리 당국자들이 달러의 속성, 아니 '그린백' 의 속성을 얼마나 알고 '결전' 에 임하려는지 그것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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