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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0회 넘긴 SBS FM ‘파워타임’ DJ 최화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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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최화정씨는 소프라노 톤의 통통 튀는 목소리가 장점이다. 최씨는 “DJ는 물론 스태프 전체가 즐거워야 청취자도 재미있는 법”이라며 “무조건 즐겁고 신나게 진행하는 게 원칙”이라고 말했다. [김경빈 기자]

그러니까 수다가 문제였다. 기껏 준비해 간 질문지도 소용 없었다. 질문과 대답이 모호해지더니 어느새 ‘수다’ 하나면 족한 상태가 됐다. 정신줄 놓고 웃다가 입이 아프도록 떠들다보니 한 시간이 훌쩍 흘렀다. ‘말빨에 눌렸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그러니 고백부터 해야겠다. 라디오 방송을, 그것도 한 프로그램만 십 수년씩 하는 건 보통 내공으론 안 된다. 올해로 방송 14년째. 최근 4500회 방송을 넘긴 라디오 DJ 최화정(48)과 한바탕 수다를 떨었다. 단독 여성 DJ로서는 최장수 기록을 세운 그는 ‘최화정의 파워타임‘(SBS 파워 FM 매일 정오~오후 2시)을 동시간대 청취율 수위로 이끌고 있다.

◆최고의 DJ 브랜드=‘최화정’이란 이름은 그 자체로 브랜드다. 그의 이름 석자에 이끌려 주파수를 맞추는 청취자들이 적지 않다. 실제로 그는 산업정책연구원의 ‘브랜드 파워’에서 5년 연속 DJ 부문 1위에 올랐다. 라디오 팬들은 왜 최화정에 열광하는 걸까.

“최화정 하면 넘치는 에너지를 떠올리는 분이 많아요. 늘 생기 발랄한 목소리를 들려 드리려고 애쓰죠. 무조건 재미있게 살자는 신조가 방송에서도 고스란히 묻어나는 것 같아요.”

그랬다. 육신이 흐느적거리는 나른한 정오. 통통 튀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면 괜히 더 열심히 살고 싶어진다. 초대 손님들도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까마득한 후배나 톱 스타도 그의 방송에만 나오면 ‘최화정 매니어’로 변한다고 한다. ‘동방신기’가 출연했다가 최씨의 휴대전화 번호를 알아갔다는 ‘전설’도 있다. 드라마 ‘하얀거탑’으로 스타 덤에 오른 배우 김명민은 건강 검진을 포기하면서까지 초대 손님으로 나서기도 했다.

“초대 손님이 오면 광고가 나갈 때도 계속 수다를 떨죠. 주로 사적인 얘긴데 그러다보면 더 친해지고 방송도 훨씬 자연스럽게 되거든요.”

◆프로 수다쟁이=최화정의 라디오 목소리는 소프라노 톤이다. 늘 수다스럽고 목이 터져라 웃는다. “가끔 기분이 쳐질 때도 있긴 하죠. 하지만 저는 최고의 대우를 받는 프로 DJ잖아요. 시그널 음악이 나올 때부터 밝은 톤을 유지하려고 마인드 컨트롤을 하죠.”

하지만 그런 그도 가까운 후배인 안재환·최진실씨 자살 사건 땐 방송이 괴로웠단다. 그는 “마냥 침울하게 방송할 수도 없고 밝게만도 할 수 없어서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그래서 그는 아예 솔직하게 “마음이 너무 힘들다. 여러분이 이해해달라”고 말한 뒤 차분하게 방송을 진행했다고 한다.

최씨의 프로 근성을 엿볼 수 있는 또다른 일화. 방송을 시작한 지 10년쯤 흘렀을 때다. 방송이 지지부진해진다 싶던 어느날, “오늘 방송중 홈페이지에 댓글 10만개가 안 달리면 그만두겠다”고 선언해버렸다. 그런데 기적처럼 방송 종료 2분을 앞두고 댓글 10만 건을 넘겼다. 와락 눈물이 쏟아졌다.

생방송 도중 툭툭 던지는 애드리브 감각도 수준급이다. 한번은 콩트 연기를 하는 도중 대본의 맨 마지막 장이 사라졌다. 스태프들이 당황하는 사이 최씨가 즉석 대사를 지어내 방송 사고를 막아냈다고 한다. 초특급 DJ인 그에게도 라이벌이 있을까. “이문세씨의 진행에 자주 자극을 받는 편이예요. 재치있는 유머와 따뜻한 배려가 강점이죠. 젊은 DJ 중에는 타블로의 진행이 독특하고 신선해요.”

TBC 탤런트 공채 출신인 그는 지난달까지 연극 ‘리타 길들이기’의 리타 역으로 녹슬지 않은 연기력을 과시했다. 그러나 그는 “딱 맞는 배역이 없다면 연기보단 라디오 일에 더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라디오 DJ가 천직인 것 같아요. 할머니가 돼도 젊은 감각을 유지하면서 마이크 앞에서 수다떨 자신이 있거든요.”  

정강현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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