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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4호선의 미성년자 단속 숨바꼭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1면

지하철 4호선은 참 묘하다. 아이들은 단속반에 쫓겨다니면서도 궤도를 이탈할 요량이 아니다. 언제 어디서 다시 만나자는 약속도 없이 흩어졌다가 모인다. 꼭 지하철 4호선 어느 역에서-. 숨바꼭질 같다. 술래는 이리저리 뛰는데 아이들은 마냥 즐거운가 보다. 그 세계에선 ‘못나가는 축’인 그들은 지금 어디 있을까.

아이들은 거기 없다. 서울 노원구 상계7·10동 일대,지하철 4호선 노원역 앞은 지금 썰렁하다. 올초까지만 해도 10대들이 주저할 거라곤 하나 없는 곳이었다. 소주방·편의방에는 교복 차림의 청소년들이 건배를 외치곤 했다. 골목마다 담배를 뻐끔대거나 술에 취해 주저앉은 청소년들이 득시글거렸다.

하지만 이젠 모두 옛날 얘기다. 밤 10시만 되면 경찰 순찰차와 정복경찰이 뱅뱅 돈다. 지난 9월 시행된 청소년보호법과 최근의 ‘자녀 안심하고 학교 보내기 운동’이 위력을 발휘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경규의 ‘양심가게 운동’도 한몫 했을 법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업주들의 태도도 바뀌었다. 미성년자로 보이는 손님은 주민등록증을 눈앞에 들이대도 받지 않는다. 한 업소는 ‘미성년자 출입금지:적발될 경우 경찰과 집에 신고하겠음’이라는 단호한 문구를 붙여 놓기도 한다. 한 소주방 주인의 이야기. “3월까지만 해도 좋았죠. 애들 코묻은 돈이 도움된 건 아니에요. 물이 좋다는 소문에 이끌려 온 어른들이 알짜죠. 그런데 지금은 물 생각해서 ‘영계’를 데려놨다간 가게 문 닫기 십상이죠. 매상이 많이 떨어졌어요.”

3년째 좌판에서 떡볶이를 팔고 있는 김현(31)씨 말로는 아이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단다. 연예인처럼 입고 다니는 애들이 먼저,곧 나머지도…. 대체 아이들은 어디로 갔나. 오뎅국물을 마시던 한 학생이 귀띔해 준다. “애들요?4호선 타고 수유역쪽으로 도로 올라갔어요.”

얼마전 대학로·돈암동등에서 변두리로 밀려나 노원역에서 둥지를 틀었던 그들이 다시 움직이고 있는 거다. 부쩍 뜨고 있는 곳은 수유역 일대. 애들은 이곳을 그냥 ‘슈’라고 부른다.

80년대말 시외버스정류장이 생기면서 상권이 형성된 곳. 여기에 ‘젊은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부터다. 소주방·록카페·노래방 등이 속속 자리를 잡았다. 노원역 주변보다 가게들도 깨끗해 뭔가 새로워 보인다.

그렇다고 제2의 노원역이란 말은 아니다. 맥도날드 앞에서 서성대는 18살 종희의 이야기. “요즘 같은 분위기에서 중딩(중학생)들이나 좆밥(날라리를 흉내내는 아이)들이 소주방이나 호프집 가는 건 어림없어요. 주인들이 안받는데야 별 수 없죠.”

간혹 술에 취한 애들도 눈에 띄긴 한다. 하지만 예전만큼 기세등등한 모습은 아니다. 대개 삼삼오오 몰려다니며 웅성거릴 뿐이다. 뚜벅뚜벅 돌아다니는 경찰들에게 삐딱한 눈총을 쏘아대며.

아이들은 4호선을 따라 성신여대·대학로·성대앞으로 더 올라가기도 한다. 그러나 전례 없는 단속에다가 노원역처럼 자신들만의 공간이 아니라는 점에서 매력이 덜하다. 다른 세대들과 엉켜 지내는 게 영 못마땅한 눈치다.

4호선을 버리고 집근처에서 노는 경우도 있다. 원정을 다니던 의정부 아이들도 동네에 ‘짱 박혔’단다. 노원역이라는 해방구에서 ‘전면전’을 벌이던 이들은 근거지에서 ‘진지전’쪽을 택한 듯하다.

4호선을 타고 왔다갔다 하는 이들은 영화‘비트’의 정우성이나 ‘나쁜 아이’들과 다르다. 대개는 못 나가는 축에 속한다. 그런대로 괜찮은 집안의 자녀들로 대학 갈 생각을 버리지 않은 점에서 우선 그렇다. 단지 또래들과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거다.

그러니 쫓겨다니는지도 모른다. 이제 이들이 ‘슈’에서 쫓기면 어디로 갈 건가. 어찌 됐건 선거 때면 단골로 등장하는 ‘청소년 문화공간의 확충’이란 말은 이젠 그만-.

글=문석·이상언,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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