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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체어 “거액의 스폰제의가 탐나기도 했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신인은 서럽다. 냉정한 현실 앞에서 꿈과 열정이 있기에 더 서럽다. 신인그룹 ‘해피체어’ 역시 마찬가지다. 가슴에 품은 한 아름 열정은 누구 못지않다. 하지만 지상파 출연 한번 하기 어려운 것이 이들의 현실이다. 지금 이들의 목표는 스타가 되는 게 아니라 대중들에게 자신들의 음악을 알리는 것이다. 지금까지 2000여회의 공연을 했다. 지방을 돌고, 대학축제를 찾아다니고 홍대에서도 공연을 했다. 그때마다 들리는 관중들의 환호성은 이들이 꿈을 포기할 수 없게 붙잡았다.

해피체어의 첫 만남은 음악 사이트였다. 서로의 의견을 말하고 댓글을 달며 뭉쳤다. 소속사 문영식 대표 역시 같은 음악 사이트에서 만났다. 조그만 규모의 사무실을 차리고 녹음을 시작했다. 모든 비용은 문 대표가 댔다. 문 대표는 원불교 교무로 재산가가 아니다. 하지만 해피체어 멤버들의 가능성과 이들의 꿈을 믿고 투자를 결심했다. 종교인의 팍팍한 살림에 앨범 제작과 숙소, 차량 등 모든 비용을 대는 일은 어려웠다. 부친이 남긴 집도 팔았다. 지금도 아들만 믿고 집까지 내주신 어머니께는 한없이 죄송할 뿐이다. 어머니는 자신의 패물까지 내어주셨다. 멤버들 역시 집안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다. 대학 학비를 대기 위해 사용한 카드 대금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로 몰린 멤버도 있었다. 부모의 이혼에 괴로워하는 멤버를 달래는 것도 문영식 대표의 몫이었다. “꿈만 가지고 시작했습니다. 멤버들을 처음 만났을 때 정말 꿈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가정의 불화로 힘들어하고 경제적인 어려움에 신음하는 멤버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습니다. 꼭 종교인이 가진 사명감 같은 그런 감정이 아니라 그저 이 재능 있는 아이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습니다.” 멤버들을 바라보는 문 대표의 눈길은 따뜻했다.

남자 네 명으로 구성된 팀에 다툼은 당연했다. 24시간 같이 있는 숙소생활은 일상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심했다. 친근감의 표시와 관심은 때론 일 이상의 관여가 되기도 했다. 해결점을 찾기 위해 회의도 많이 했다. 결국 이들이 선택한 해결방안은 점집이었다. 점집에 찾아가 각 멤버들의 사주를 보기도 했다. 그렇게 서로가 한 몸이 되어갈 때 다시 돈이 문제가 됐다. 고정 수입이 없는 해피체어에게 돈 문제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다. 돈을 벌기 위해 미사리 공연을 선택했다. 라이브 카페에서 공연을 하며 적지만 소중한 수입이 생겼다. 관객들 역시 신인가수에게 따뜻한 호응을 보내줬다. 미사리 공연 후 팬이 찾아왔다. 해피체어의 멤버 장동혁 군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이었다. 자신이 만성신장염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고 말한 이 팬은 자신이 죽기 전에 해피체어가 뜨는 것을 꼭 보고 싶다고 했다. 멋진 숙소와 밴 그리고 앨범제작비까지 제시했다. 어쩌면 한순간에 모든 역경을 털어버릴 기회일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말로만 듣던 스폰 제의. 견디기 어려운 유혹이었다. 하지만 문영식 대표와 해피체어 멤버들의 결정은 단호했다. 대답은 "노"였다. 무명의 설움과 배고픔이 너무나 힘들지만, 모두가 방황할 때 돌아갈 곳이 해피체어였다. 그 이름에 부끄러울 수는 없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와 명예 그리고 부까지, 연예계는 마치 황금벌판으로 비쳐진다. 그러나 고 장자연 사건이 보여주듯 현실은 냉혹하다. 소속사와 연예인 그리고 매니저 사이의 갈등이 판을 치고 소위 ‘빽’이 없으면 뜨기도 힘들다. 해피체어에겐 대형 기획사도, 빽도 없다. 심지어 돈도 없다. 하지만 소속사 사장과 멤버들 모두가 해피체어다. 재능만을 믿고 모든 것을 희생해준 문영식 대표가 있고, 열정을 가진 멤버들이 있다. 믿음과 이해로 뭉쳐진 이들. 이들이 만들어가는 음악은 지금도 거리 어디에선가 조용히 울려 퍼지고 있다.

뉴스방송팀 강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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