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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블로그] '슈렉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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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렉'을 보는 즐거움은 클래식 음악의 유장한 음률만 10년간 들어온 청중에게 어느 날 던져진 재즈나 록.힙합 사운드의 자유롭고 발랄한 참신함 같은 것이다. '따라라 라라~'로 길들여진 귀에 "띠립띠립 띠리리" 혹은 "움빠 움빠" "예! 요~"가 줄 수 있는 재기 넘치는 리듬감과 즉흥성, 존엄함이 무너지는 순간의 쾌감. 어느 디즈니 영화가 피노키오에게 "너 여자 팬티 입었지?"라는 대사를 매치시킬 수 있으며 아무리 권위를 벗어던진 요정이라 하더라도 사랑으로 맺어진 커플을 '찢어놓는' 악당이 될 수 있겠는가.

슈렉의 속편 포스터가 나붙은 몇 달 전부터 하루는 왜 그리 더디 가던지. 드디어 속편이 막을 연 순간. 슈렉과 피오나의 집에 혼자 벌렁 드러누운 동키가 부르는 노래는 "One is the loneliest number that I'll ever do~" 큭큭. 저건 한참 우울한 폴 토머스 앤더슨의 영화 '매그놀리아'의 삽입곡이잖아. 역시, 이런 재미거든. 옆에 앉은 아들은 절대 웃을 수 없는, 아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재미. 이러니 슈렉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

흠, 이를테면 '슈렉'의 쾌감은 연령대별로, 그리고 매니어적인 감성도별로 각자 취향에 맞게 나름대로 '골라 먹는 재미'가 있는 영화라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저기 가릴 것 없이 찔러대는 패러디의 화살이 결코 격조를 잃지 않아 안정감이 있다. 영화 속에선 기존 영화의 패러디와 미국의 각종 상표 및 동화 속 주인공들의 패러디가 쏜살같이 지나가지만 어린 관객들이 그런 걸 다 알아채서 이 영화의 팬이 된 것은 아닐 것이다. 아이들에게 큰 인심이라도 쓰는 양 손을 잡고 온 어른 관객들에겐 "너 자신의 그대로가 가장 소중한 거란다. 외모는 껍데기에 불과한 거야"라는 동화 같은 교훈을 되새겨주는 한편으론 데이빗 보위나 닉 케이브 같은 얼터너티브한 감성의 음악을 찾아 듣는 재미.

속편을 보면서 1편 같은 감흥이 없다고 투덜대지 마시라. 이 정도의 품위와 수준을 유지한 속편이라면 007시리즈만큼 이어진다고 해도 쌍수를 들어 환영할 테니. 3편은 어떤 이야기일까? 아무래도 "행복하게 오래 오래 살기" 위해 넘어야 할 장벽인 슈렉과 피오나의 '권태기'가 아닐까….

Re : 냐사모
'장화 신은 고양이'를 빼놓다니, 핵심을 놓치셨군요. 그 초롱초롱한 눈망울과 느끼한 목소리를 사랑해요!(냐옹이를 사랑하는 모임)

Re : 매사진지
전 그래도 1편보단 어딘가 모르게 부족한거 같던데. 패러디도 그냥 이름만 바꿔놓은 데 불과했고, 비판정신도 부족하고….

Re : 변칙남
ㅋㅋ… 전 '독이 든 사과'술집의 마담 남장여자의 '신데렐라 양언니'에 한표!

Re : 파병반대
지금은 영화 보면서 히히덕거릴 때가 아닙니다. 모두 고 김선일씨 명복을 빕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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