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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사정관제의 오해와 진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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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괜한 걱정이고 오해일까. 그런데 얕은 생각에 ‘오비이락(烏飛梨落)’이 떠오른다.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사립대 총장들을 만난 것은 3일이다. 입학사정관제 도입 대학을 차등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앞장서줄 것을 부탁했다. 그 후 일이 생겼다. KAIST는 올해 일반고생 150명을 입학사정관 면담 등을 통해 무시험으로 뽑겠다는 기자회견을 했다(5일). 라이벌 포스텍은 신입생 300명 사정관 전형 방법을 내놨다(9일). 기자들과의 점심 자리에서였다. 둘 다 예정된 행사였다지만 묘했다.

분위기가 익자 교과부는 선물을 내놨다(9일). 40개 대학에 올해 236억원, 잘하는 10곳은 10억~30억원이었다. 지원 대학 선정 기준 핵심은 학생 선발 숫자였다. 진짜 오해가 시작됐다. 전국에서 “나도요”를 외쳤다(10일 이후). 10곳에 끼지 못하면 ‘망신’이란 소리도 들렸다. 지난해 사정관 전형으로 20~50명을 뽑았던 대학들이 수백 명, 많게는 1000명까지 숫자를 불렸다. 홍익대는 미대 실기까지 없애겠다고 했다. 기자에게 “우리도 한다”며 기사화를 부탁한 곳도 여럿 있었다. 숫자를 합해봤다. 1만 명이 넘었다.

방향은 옳다. 수험생 성적만 보지 않고 잠재력·창의력·끼·열정을 두루 보고 뽑는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 미국은 1920년대, 일본은 90년대에 도입했다. ‘교육 강국’인 우리가 못할 일이 아니다. 잘만 하면 건국 이래 최대 입시혁명이 될 수 있다. 사교육도 줄일 수 있다. 안 장관도 ‘치적 세우기’에 흥분한 모양새다.

근데 찜찜하다. 우선 머릿수 부풀리기다. 올해 입시안은 각 대학이 지난해 11월 발표했다. 뜯어봤다. 전형 인원이 뻥튀기됐다. 5~10배는 약과다. ‘0’명에서 600명으로 불린 곳도 있다. 단순 서류심사까지 사정관 전형인 양 에두른 것이다. 흉내만 내려는 게 아닌가.

인력과 객관성도 걸린다. 사정관은 40개 대학 218명이 전부다. 평균 5명이다. 500명을 뽑는 대학의 경쟁률이 10대1이면 5000명이 몰린다. 수험생의 자기소개서나 추천서 등을 깐깐하게 봐야 한다. 사교육 위장술이 만만찮다. 학생이 쓴 것처럼 티 안 나게 작성해준 것을 객관적으로 걸러낼 수 있을까.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서류심사가 사정관의 본업도 아니다. 지난해 서울대는 전남 화순 탄광촌까지 달려갔다. 건국대는 1박2일 심층면접을 했다. 숨은 보석을 찾아내는 사정관의 진정한 역할은 그런 것이다.

대학이 돈 때문에 정부에 맞장구쳤다고 믿고 싶지 않다. 그래도 오해 살 일은 했다. 급했다. 학생·학부모·교사가 헷갈린다. 경험을 쌓고 차근차근 확대하라. 명칭도 생각해 보자. 입학사정관의 ‘사정관’이란 말이 좀 그렇다. ‘입학전형관’이나 ‘입학전형위원’은 어떨까. 25일 열리는 전국입학처장협의회에서 논의해 보시라.

양영유 교육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