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사리던 시중 자금, 회사채로 회사채로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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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오갈 데 없는 자금이 회사채 시장에 몰리고 있다. 청약 경쟁률이 수십 대 1을 기록한 채권도 등장했다. 한동안 부도 위험에 몸을 사렸던 개인들과 제2 금융권이 본격적으로 회사채를 사들이고 있는 데 따른 과열 현상이다. 무엇보다 은행권 금융상품의 이자가 뚝 떨어진 게 큰 이유다.

국내 소매 채권시장의 강자인 동양종금증권의 채권 판매 창구는 올 들어 연일 붐빈다. 지난해에 비해 채권 판매가 네 배가량 늘어난 탓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월 평균 1500억원가량의 채권을 판매했다. 그러나 올 들어 1월과 2월에만 모두 1조2000억원어치가량을 팔았다. 삼성증권과 우리투자증권·대우증권 등 다른 대형 증권사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또 올 1월과 2월에는 2000년 이후 개인들의 회사채 매수 금액이 최고치를 연이어 경신했다. 22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 들어 장외 채권시장에서 개인의 회사채 순매수 규모는 1월 3392억원, 2월 3652억원을 기록했다. 회사채 매수 주문이 쏟아지는 바람에 청약 경쟁률도 껑충 뛰었다. 이달 중순 실시된 기아자동차 신주인수권부사채(BW) 공모는 4000억원 모집에 8조원이 몰려 평균 20대 1의 청약 경쟁률을 기록했다.

김병철 동양종금증권 상무는 “은행이 연 3%대의 이자를 지불하는 데 비해 A등급의 회사채는 6%대의 수익을 안겨준다”며 “은행의 저금리에 만족하지 못한 자금이 회사채 시장으로 넘어왔다”고 분석했다.

특정 회사의 채권을 투자자가 직접 매매하는 소매 채권시장뿐 아니라 자산운용사가 운용하는 채권 펀드도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지난해 4분기 이후 연이은 기준금리 인하 덕에 펀드 수익률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동양투신운용의 동양매직국공채 1Class C- 1의 1년 수익률은 20일 현재 12.88%를 기록했다. 또 하이자산운용의 하이굿초이스채권1도 11.22%로 10%대의 수익률을 달성했다. <표 참조>


그간 채권 펀드가 대개 5~6%대의 수익을 냈던 데 비해 배 이상 좋은 성적을 거둔 것이다.

이 밖에 연 수익률 7% 이상을 기록한 펀드는 20개로 나타났다.

앞으로가 문제다. 지금까지는 한국은행이 경기 부양을 위해 적극적으로 기준금리를 떨어뜨린 덕에 채권 가격이 급등했다.

실제 동양투신운용의 동양매직국공채펀드도 1년 수익률이 12.88%인 데 비해 6개월 수익률이 12.14%를 기록했다. 연간 수익률의 대부분을 최근 6개월에 걸쳐 냈다는 뜻이다.

기준금리가 2%인 상황에서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 여력이 예전만 못하고 ‘수퍼 추경’을 위한 대규모 국채 발행도 예정돼 있는 점은 채권시장에 악재다. 이런 상황에서 이달 18일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장기 국채를 직접 사들이겠다고 발표한 것은 국내 채권시장에도 호재로 작용했다.

마득락 대우증권 상무는 “한국은행이 수퍼 추경을 위해 발행할 국채를 미 FRB처럼 직접 사들일 수도 있다”며 “정부와 한은은 대규모 국채 발행으로 인해 금융시장에 주름이 잡히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동양종금증권 김 상무도 “수퍼 추경 채권 발행 건은 이미 시장에 반영돼 있다”고 말했다.

이희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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