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전역서 도서관 뒤져, 복사비만 1000만원 넘게 들어”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06호 04면

상명대 일어교육과 출신인 성윤아(사진)씨는 한국에서 석사를 마치고 2000년 9월 일본으로 건너갔다. 도쿄대 국어연구실 연구원 9년차다. 그는 ‘조선어회화서’ 연구로 23일 도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는다. 113년 역사의 연구실에서 네 번째 박사학위 수여자라고 한다. 외국인으로는 처음이다. 학위 수여식에 참석하기 위해 출국을 앞두고 있던 지난 19일 성씨와 만났다.

113년 역사 도쿄대 국어연구실 4호 박사 성윤아씨

-조선어회화서를 어떻게 발굴했나.
“조선어회화서를 구하기 위해 수년 동안 일본 전역을 헤매고 다녔다. 홋카이도·규슈·오사카·야마구치 등 일본 각지의 도서관과 대학을 방문해 조선어회화서를 모으는 일이 연구 과정의 전부일 정도였다. 모두 74종의 자료를 찾아냈다. 이 중에는 그동안 일본 학자들도 처음으로 접하는 자료가 많이 있었다. 원본 자료를 이용할 수 없어 사본 복사비만 해도 거의 1000만원은 넘게 든 것 같다(웃음). 하지만 먼지가 잔뜩 쌓인 책 표지 위에 내 손자국이 처음 묻어날 때는 묘한 희열을 느꼈다.”

-130년 전 일본에서 발간된 조선어회화서라는 소재 자체가 독특하다.
“일본어 변천사 연구를 위해 유용한 자료이면서도 조선어회화서를 통해 개화기 조선의 생활상을 비롯해 당시 복잡하게 전개됐던 동북아 정세를 엿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메이지유신 초기에는 주로 상업과 무역 용도로 만들어졌다가 청일전쟁·러일전쟁을 치르면서 일본의 조선 침략과 대륙 진출에 활용할 목적으로 많은 양의 회화서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조선어회화서를 통해 일본어 변천사를 연구하게 된 계기는.
“대학 4학년인 1991년 일본 도쿄로 한 달간 연수를 떠났다가 현지 고서점에서 100여 년 전의 일본 고어를 접하고 흥미가 생겼다. 박사과정에 들어가 처음 2~3년 동안에는 연구 테마를 잘 잡지 못해 많이 헤맸다. 내가 한국인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100여 년 전 일본인이 한국말을 배우기 위한 교재로 사용했던 조선어회화서에 관심을 갖게 됐다.”

-도쿄대 국어연구실의 학위 심사 과정이 상당히 까다로운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113년 역사상 내가 4호 박사이자 외국인으로서는 첫 박사학위 수여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학위 심사 때 까다로운 질문이 이어져 답변하며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긴장했던 기억이 난다. 도쿄대는 한국에서의 석사학위를 인정하지 않아 석사 자격시험부터 다시 준비해야 했다. 새로 석사학위를 딴 뒤 5년을 더 공부해 올해 드디어 박사학위를 받게 됐다. 아이를 키우고 있어 엄마로서의 역할을 동시에 하는 것도 힘들었다.”

-현지에서 경험한 일본 학문 연구 풍토는 어떤가?
“석사과정에 들어가 첫 수업을 받는데 장갑을 가져오라더라. 오래된 사료를 보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했다. 사료 연구자로서 사료를 펼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인맥이나 학맥으로 차별하는 일도 없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