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팟의 성공 비결은 컨셉트 경쟁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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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호 12면

미국발 금융위기로 촉발된 글로벌 경기침체가 언제 끝날지 아직 종잡을 수 없다. 세계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으로 곤두박질치는 중이어서 누구도 앞날을 장담하기 힘든 형국이다.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제너럴 모터스 같은 글로벌 기업마저 매출 급감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이런 위기 국면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컨셉 크리에이터』, 김근배 지음, 책든사자 펴냄, 592쪽, 2만5000원

숭실대 김근배(경영학) 교수가 이런 고민 해결에 실마리를 제공할 책을 펴냈다. 그가 제시하는 돌파구는 ‘컨셉트(concept·업계에선 컨셉으로 많이 씀) 능력 키우기’다.
김 교수는 “한국 기업 대부분이 그동안 남의 것을 모방하는 데 치중해 왔다”며 “이번 위기를 계기로 컨셉트 개발 능력을 키우는 데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 기업이 애플의 MP3 ‘아이팟’이나 닌텐도의 게임기 ‘위’ 같은 세계적 히트 상품을 못 내놓는 이유가 바로 컨셉트 개발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란다. 신제품 개발, 브랜드 정하기, 광고 및 홍보 등 모든 마케팅 활동의 성패도 컨셉트 경쟁력에 달려 있다는 게 저자의 시각이다. 마케팅의 핵심이 컨셉트 싸움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컨셉트의 역할을 두 가지로 제시한다. 첫째는 소비자에게 제품이나 서비스의 가치를 이해시켜 구매 이유를 제공하는 것이다. 소비자가 느끼는 제품의 가치(제품 컨셉트력)는 니즈를 충족하는지(필요성), 대체재가 있는지(차별성), 편익을 쉽게 감지할 수 있는지(유형성)에 의해 결정된다. 저자는 이를 집 모양을 본뜬 ‘컨셉트 하우스’로 간명하게 보여 준다.

지붕에 해당하는 삼각형은 제품 컨셉트를 언어로 표현할 때 필요한 3요소이고, 본체에 해당하는 사각형은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 등 오감으로 느끼는 제품의 유형 요소를 뜻한다. 컨셉트 하우스를 튼실하게 만들수록 제품 컨셉트력도 커지게 마련이다. <그래픽 참조>

여기서 유의할 대목은 제품 컨셉트력이 반드시 구매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란 점이다. 중요한 요소가 하나 더 있다. 제품을 제대로 알리는 표현 컨셉트(광고와 홍보)다. 표현 컨셉트의 중요성은 경동보일러의 광고가 극명하게 보여 준다. 이 회사는 ‘아버님 댁에 보일러 놔 드려야겠어요’란 카피로 유명한 효(孝) 컨셉트 광고 덕분에 3년간 쌓인 재고를 6개월도 채 안 되는 기간에 팔아 치우며 189%의 매출 신장을 올렸단다.

컨셉트의 둘째 역할은 회사 내 모든 마케팅 활동을 통합해 일사불란하게 소비자에게 가치를 전달하는 것이다. 이는 임직원을 한 방향으로 가게 하는 힘이 된다. MP3 제조업체 레인콤이 ‘우리의 경쟁자는 애플이 아닌 아르마니’라고 규정한 게 좋은 본보기다. 지향점이 전자업체가 아닌 패션 디자인 업체임을 명확히 함으로써 이 회사는 고객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제품 디자인을 끊임없이 개선해 대기업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저자는 마케팅 실무자와 마케팅 전공 대학생을 타깃 독자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그런 만큼 실무에 적용할 수 있도록 기능형 컨셉트, 감성형 컨셉트, 리뉴얼 컨셉트 등 세부 컨셉트를 개발하는 데 필요한 노하우를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그렇다고 마케팅과 무관한 사람이 범접하기 힘든 책이란 생각은 안 든다. 흥미진진한 국내외 마케팅 성공·실패 사례가 워낙 많이 실려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4년간 수집했다는 생생한 사례만 골라 읽어도 컨셉트 능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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