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연극제 결산]下.전망과 대안…우물안 개구리 탈출, 질높이기 힘써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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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이번 세계연극제는 2억여원의 적자로 끝났다.

하지만 우리 연극계로서는 경제적 손실을 만회할만 한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우선 연극 내적인 면에서 한국연극의 뼈아픈 반성의 계기가 됐다는 점이다.

즉, 국내 작품과 해외작품의 비교.평가가 진행됨으로써 우리 연극이 얼마나 우물안 개구리였는 지 적나라하게 노출된 것이다.

이번 행사에 초청된 해외작품중에는 사적 (史的) 인 측면에서 이미 20여년이 지난 '올드 패션' 이 있긴 했으나,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전례없는 성황속에 공연을 마쳐 우리 관객들이 얼마나 새로운 시각에 목말라 했는 지를 실감케 했다.

일례로 미 라마마극단와 동랑연극앙상블이 합동 제작한 세계연극제 최대의 화제작 '트로이의 여인들' 은 진작 소개됐어야 하는 것으로 때늦은 감이 있었다.

특히 한때 미 실험극의 온상이었던 라마마가 이제는 옛 명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시기적인 아쉬움을 남겼다.

또한 해외초청극 (무용 포함) 의 공통된 경향과 비교해서 우리 연극은 너무나 고정된 틀에 안주해 있었다는 지적이다.

연극과 무용의 자연스런 만남 (마기 마랭의 '메이 비' 등) 을 유도하고, 무대를 온전히 배우들에게 맡겨 연극의 원형을 회복 (그리스 아티스극단의 '안티고네' 등) 시키려는 등의 시도는 우리무대에서 쉽게 발견되지 않는 것이었다.

서구에서 이미 십수전부터 시작된 이런 주류적 경향을 우리 관객들은 이제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와중에 터졌던 프랑스 아비뇽연극제 다르시에 집행위원장의 발언은 우리 연극관계자들을 그로키 상태로 몰았다.

내년 아비뇽연극제에 한국 공연물을 주요 프로그램으로 기획하고 있는 그는 세계연극제 기간중 방한, 국내작품을 돌아보고 “주목할게 없다” 는 요지의 말을 해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다행히 연극인들은 그의 발언을 곡해하지 않고 살을 깎는 반성의 경구로 받아들여 성숙한 일면을 보였다.

연출가 심재찬씨는 “그의 말이 아니더라도 세계연극제는 국내연극의 질적 심각성을 깨우쳐준 계기였다” 며 “앞으로 '공부해야 산다' 는 당위적 사명의식을 연극인들의 가슴속에 각인시켰다” 고 말했다.

한국연극의 발전적인 전망을 읽게 해주는 대목이다.

작품외적인 면에서 세계연극제는 많은 전문인력을 배출했다.

이번 행사기간동안 연극에 관심있는, 양질의 젊은이들이 조직위 인력이나 자원봉사자로 참여해 많은 시행착오속에서도 큰 행사를 치르는 방법을 익혔다.

내년부터는 서울연극제를 국제연극제로 격상시킬 예정이고, 경기도 가평에서도 지역특색에 맞는 국제연극제를 준비하고 있어 이 전문인력들이 이런 행사에 투입된다면 우리도 조만간 짜임새 있는 세계 연극축전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래서 미흡한 점이 많았던 만큼 배운 것도 많았던 이번 세계연극제의 대안으로서 내년 서울국제연극제와 가평국제연극제가 주목된다.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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