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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타와 AIG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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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본 회사들이 실적이 무지 안 좋은 모양이던데요. 도요타도 정규직 1000명, 비정규직 6000명을 잘랐다면서요.”(기자)

“그렇긴 한데, 도요타의 현재 총자산이 약 30조 엔(약 442조원)인데, 그중 내부유보금이 얼마인지 아세요. 무려 약 11조 엔(약 162조원)이에요.”(50대 은행 간부)

실적이 나빠지고 있는 건 맞지만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할 정도의 상황은 결코 아니라는, 즉 엄살이 섞여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보면 11조 엔이라는 내부유보금 수준은 삼성전자의 총자산(약 93조원)까지도 훨씬 웃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공인회계사가 거들었다.

“허허, 실은 우리 회계법인도 얼마나 속이 후련한지 몰라요. 주요 고객인 H그룹 눈치보느라 그동안은 손실을 털어내기 어려웠는데, 올 3월 말 결산 때 회사 측에서 기존 손실을 다 털어내도 좋다고 하네요. 실적수치가 악화됐다 해도 워낙 모든 기업이 전반적으로 어렵다고 하니까, 주주들도 대충 넘어가는 분위기거든요.”

#2 18일 오전. 도요타 경영진이 기자회견을 열고 “내년도 기본급 인상을 동결한다”고 발표했다. 노조 측 요구는 월 4000엔 인상이었다. 기본급을 올리지 않는 건 4년 만이다. 연간 보너스도 노조는 1인당 평균 198만 엔을 요구했지만 회사 측은 186만 엔을 주겠다고 말했다. 노조 측의 보너스 요구 수준보다 낮은 가격을 제시한 것은 10년 만이다. 그동안 도요타는 경영이 어려울 때마다 기본급 인상을 동결하는 대신 보너스를 올리는 방법으로 종업원들의 수입을 보전해 왔다. 바꿔 말하면 도요타가 기본급을 동결하고 보너스도 깎은 것은 일찍이 없던 일이다. 그럼에도 노조의 반발이 들려오지 않으니 신기할 뿐이다. “매우 아쉽다”(자동차노조총연합 니시하라 고이치로 회장)는 게 유일한 반응이다.

#3 미국의 대형 보험사인 AIG가 간부사원 73명에게 총 1억6500만 달러(약 2310억원)의 보너스를 지급했다. 한 사람당 많게는 640만 달러(약 89억6000만원)를 줬다. “(보너스를 못 받아) 종업원들이 퇴직하면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란다. AIG는 지난해 최종손실이 992억 달러다. 도산 위기에 처했지만 “너무 덩치가 커 살릴 수밖에 없다”며 미 정부가 구제금융을 실시한 곳이다. 벌써 4차례에 걸쳐 1700억 달러의 공적자금이 투입됐다. 앞으로 얼마나 또 투입될지 모른다. 그러자 미 상원의 한 의원은 “일본 경영진처럼 (보너스 사태에 책임을 지고) AIG 경영진은 사임하거나 자살을 택해야 할 것”이라고 독설을 퍼부었다.

도요타와 AIG의 사례는 미국과 일본의 기업문화 차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항상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다소 엄살을 떨면서 어깨동무하며 이를 악무는 일본. 반면 최우선적으로 개인의 이익 추구를 챙기는 미국. 어느 쪽이 정답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위와 같은 상황에다 외부요인인 엔화 강세까지 멈출 경우 근육질 경쟁력으로 무장해 있을 일본 기업이 우리로선 두려울 뿐이다.

김현기 도쿄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