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긴급진단 한국경제 현주소…부도 도미노 무엇이 문제인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한국경제는 도대체 어떤 상황에 있는 것인가." 수출이 늘고 성장률도 회복세에 있다는데 대기업들의 부도 도미노속에 주가폭락.환율폭등 사태가 이어지면서 금융시장 전체가 요동치고 있으니 말이다.

이러다가는 정말 제2의 태국외환사태를 맞을지 모른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한국경제의 당면과제를 부문별로 점검해 본다.

정부가 일련의 부도사태에 적극 개입하기 시작했다.

적어도 대통령선거때까지는 정부가 직접 나서 대형 부도를 막겠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기아처럼 오랜 시간을 끌어 온 부실기업에 대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내려 서둘러 해결책을 찾는다는 복안이다.

분명한 것은 거시경제지표와는 상관없이 한국경제가 심각한 위기상황에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시장원리에 맡기겠다고 '불간섭원칙' 을 고수해왔던 정부가 최근 '적극개입' 으로 입장전환을 한 것도 다급해진 사태인식의 증거다.

문제의 근본은 역시 부실.한계기업들의 연쇄도산 현상이다.

올해 들어 대기업부도가 갈수록 빈도가 높아지고 있고 '번호표' 를 타 놓은 기업들이 적지 않다.

증시에 소문이 한번 돌았다 하면 끝장인 경우가 허다하다.

부실경영의 구조조정 고통에다 한보사태 이후 얼어붙은 금융기관들의 위축현상까지 겹치는 바람에 한계기업들의 '캐시 플로 (자금조달)' 가 극도로 악화된 결과다.

또 언제, 어느 기업이 부도낼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증시를 에워싸고 있다.

투자자들이 우량주식이건 불량주식이건 가릴 것 없이 무차별적으로 '팔자' 주문을 내면서 전체 폭락장세를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시중에 돈이 부족한 게 아니다.

금리는 떨어지고 은행의 지불준비금은 넘쳐나고 있다.

문제는 돈이 제대로 안 돌고 있는 것이다.

기업들을 믿지 못하는 금융기관들로서는 웬만하면 대출사절이다.

이런 과정에서 이달 들어 쌍방울.태일정밀.뉴코아등이 잇따라 손을 들었다.

구조조정 차원에서 본다면 어쩔 수 없는 결과다.

그러나 원칙과 명분을 고수하기에는 그 파장과 부작용을 감당할 능력이 없다는 게 문제다.

20일의 메가톤급 부양책에 아랑곳없이 다음날 아침 주가가 곤두박질친 것이 사태의 심각성을 말해 준다.

실물쪽의 누적된 부실도 문제지만 이쯤 되면 금융시장쪽에도 그야말로 공황사태가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우량기업들의 기업어음 (CP) 상환러시가 일어날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정치권의 비자금파문도 최근의 불안을 부채질했다.

특히 계좌추적 문제는 주가폭락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한편 증시붕괴는 외환시장에 직격탄을 퍼부었다.

국제수지가 호전되고 있으므로 환율은 오히려 안정을 찾아야 하는데 주식에 들어가 있던 외국인투자가가 손을 털고 나옴에 따라 환율을 급등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마침내 정부가 팔을 걷어붙이고 직접 교통정리에 나서기에 이르렀다.

연쇄부도를 더 이상 방치했다가는 금융시장에 무슨 일이 더 벌어질지 모르겠다는 판단에서다.

21일 밝힌 협조융자 사전협의제도를 통해 구제금융의 길을 터놓기는 했으나 과연 이것이 정부 의도대로 움직여 나갈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정부로서는 부도의 충격을 줄이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반해 해당은행들로서는 '어디까지나 흑자도산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구제금융' 이라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권말기의 레임덕 현상, 더구나 대선정국의 정치적 혼란상 자체가 한국경제의 불확실성을 한층 고조시키고 있음이 더 근본적인 문제라는 지적들이 많다.

고현곤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