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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의 여인 - 연하의 남자 커플 는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1면

야야야야 쇼킹 쇼킹∼”. 주주클럽의 ‘16/20’. 폰팅으로 만난 상대가 동갑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16살이라 쇼크를 받았다는 20살 여자 이야기다. 이 노래를 듣고 ‘네살 연하 남자라니. 말도 안돼’라며 코웃음을 쳤다면 당신은 이미 구세대! 그래,그렇다면 얼마전까지 대학가에서 인구에 회자되던 ‘사랑은 국경은 넘어도 학번은 못 넘는다’는 명언은 어떻게 됐지?

올해 지방 C대학 전기전자공학부에서 탄생한 캠퍼스 커플은 모두 6쌍. 이들 모두 여자 96학번,남자 97학번이라는 공통점을 지녔다. ‘단지 여자가 한두살 많다는 이유로’ 학교 선후배의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만 했던 80년대 캠퍼스 커플이 들으면 땅을 칠 일이 아닐 수 없다.

카페에서 함께 아르바이트를 하다 친해진 두살 연하의 남자친구와 결혼까지 고려하고 있다는 송모(24·회사원)씨의 이야기.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나기 전에도 한살 아래의 남자친구를 사귀었어요. 한두살차가 별건가요? 동갑이나 별 다를 게 없다고 생각되요. 오히려 나이많고 말도 안통하는 아저씨보다 백배 낫죠 뭐.” 다시 대학생 조희정(20·여)씨의 말. “PC통신 이나 헌팅을 통해 만난 커플이 많아지면서 연상녀·연하남 커플이 늘고 있어요. 친구들 중에는 심지어 고등학생과 사귀는 경우도 있는걸요.”

이것저것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골치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색하지는 않을까. 애인을 ‘누나’라고 부를까.

이들의 대답은 ‘노 프로블럼(No Problem·문제없다)’. 웬 누나? 커플 당사자는 물론 친구들끼리도 서로 말을 놓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 나이 한두살 더먹고 학번 좀 빠르다고 깍듯이 대우하던 시절은 이미 지난건가. ‘연하면 어떠냐 멋있으면 그만이지’를 외치며 H.O.T등 자신보다 어린 남자연예인들을 떳떳하게 좋아하는 여대생이 늘고 있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다이어리에 H.O.T 멤버 강타의 사진을 꽂고 다니는 황의선(20·S여대 1년)씨는 “강타가 나보다 어린 것은 알지만 뮤직 비디오에서 그를 보면 너무 멋있어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고 목청을 높인다. 나우누리에는 ‘에쵸티 대딩팬(대학생팬)연대모임’이라는 친목단체도 생겼을 정도다.

보통 사람들보다 사고나 행동이 자유로운 연예인들에게는 연상녀·연하남 커플이 유별난 게 아니다. 6살 차이인 킴 베이싱어-알렉 볼드윈, 12살 차이나는 수잔 서랜든-팀 로빈스,5살차인 브룩 실즈-안드레 애거시 등 찰떡궁합을 자랑하는 스타커플들이 있고 우리나라에도 심수봉(7살차)·노사연(3살차)·민해경(5살차)등이 있지 않은가.

TV나 영화도 연상녀·연하남 커플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는데 한몫한다. 가수 유승준의 ‘사랑해 누나’는 “혹시나 하는 두려움은 모두 떨쳐버려/세상이 만들어 논 기준들은 모두 버려”라고 부추긴다. SBS 드라마 ‘달팽이’에서 이미숙-이정재, MBC‘사랑과 이별’에서 조민수-구본승 커플의 사랑이 진행중이고 올초 개봉된 영화‘러브 앤 워’는 8살 연상의 간호사와 부상병의 애틋한 사랑을 그렸다.

그렇다면 연상녀·연하남 커플은 뭐가 좋고 나쁜 것일까. 지난 3월 월간여성지‘칼라’에서 20∼25살 남녀 1백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의하면 좋은 점으로 여자의 24%가 ‘더 젊어진다’를,남자의 33%가 ‘편안하다’를 꼽았다. 남녀 각각 11%는 ‘다른 커플과 똑같다’고 말했다. 정작 흥미로운 것은 좋은 점과 나쁜 점 1위가 결국 같은 얘기란 점이었다. 여자의 42%,남자의 39%가 ‘누나처럼,남동생처럼 행동하는 상대가 싫다’고 답했으니까. 시간이 흐르고 나면 결국엔 평범한 남녀에 불과할진저.

내식(式)대로 순간의 감정을 중시하는 신세대 특성을 감안하면 연상녀·연하남 커플의 미래는 결코 어둡지 않다. 하긴 일에 빠져 혼기를 놓친 전문직 여성이 늘어나고 남녀 성비 불균형이 심화되면서 21세기에는 아내의 나이가 더 많은 역전혼(逆轉婚)이 흔해진다니. 오늘의 그들은 어쩌면 시대를 앞서가고 있는지도 모르지.

관심을 끄는 통계청 자료 하나. “부부가 같은 해에 세상을 뜨려면 여성이 7~9살 연상이어야 한다.” 그리고 생리학적 남과 여 분석. “10살 정도 여자 나이가 많은 것이 바람직하다.” 갑자기 상황이 복잡해진다. 이 참에 아예 남녀 나이에 얽힌 고정관념을 모두 허물면 어떨까.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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