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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부즈맨칼럼]진실 보도·추구에 비중두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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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요즘의 신문을 보면서 나는 오늘의 시대상황을 '위 (僞) 와 악 (惡)' 으로 특징짓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한자에서 '위' 란 글자는 사람을 뜻하는 인 (人) 자와 원숭이의 흉내내는 모양을 본뜬 위 (爲) 자를 합해 만든 것이다.

이 글자는 원숭이가 사람 (人) 의 흉내를 내 (爲) 나 거기에 참뜻은 없다고 해 '거짓' 의 뜻이 됐고 나아가 '속이다' 의 뜻이 됐다고 일컬어진다.

그런데 '위' 란 한자는 사람의 거짓이나 속임이 원숭이의 흉내보다 더욱 나쁘다는 함의 (含義) 를 지니는 것으로도 풀이된다.

이것은 결국 거짓이나 속임이 '사람' 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순열 (荀悅) 이 지은 '신감 (申鑒)' 에 보면 '위' 와 관련해 매우 신랄한 지적을 하고 있다.

그는 나라가 어지러운 것은 대개 정치에 큰 병이 들었기 때문인데, 그 큰 병의 첫째는 바로 '위' 에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순열은 이밖에도 '사 (私)' 와 '방 (放)' 과 '사 (奢)' 를 더해 나라의 네가지 큰 병이라고까지 이름 붙였다.

순열에 따르면 정치가 '위' 의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은 대개 간웅 (姦雄) 또는 간웅 (奸雄) 의 발호 때문이라고 한다.

여기에서의 간 (姦) 또는 간 (奸) 은 '위' 와 상통하는 것이고, 그것이 진짜 인물이라는 뜻의 영웅 (英雄) 과 상반되는 것임은 구태여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런데 '위' 의 활갯짓은 단순히 인물 그 자체만으로 판치지는 못하는 법이다.

거기에는 반드시 부화뇌동이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지식이나 지식인의 머리에서 '대위 (大僞)' 가 나온다는 말도 그런데서 연유한 것이라고 일컬어진다.

나는 이른바 지식인과 큰거짓이란 뜻의 '대위' 의 관계에서 언론 (言論) 의 존재양식과 당위 (當爲) 를 생각해 보게 된다.

오늘날과 같은 개명된 세상에서 옛날에나 있을법한 '위' 나 '대위' 가 판치는 상황이라면 거기에서 언론이 한 역할이 무엇이었는지 심각하게 자성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사실 정치상황과 관련한 언론의 보도를 에워싸고 여러가지 논란이 비등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것은 과거의 보도에서부터 오늘의 논평에 이르기까지 비판과 평가의 소용돌이를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는 두말할 것도 없이 언론이 정도 (正道) 를 걷는 이외의 방법은 없을 터이다.

그러면 무엇이 언론의 '정도' 인가.

이것은 누구나 암묵 (暗默) 속에 합의한 것 같으면서도 또한 암묵 속의 미합의 상태에 있는 미완 (未完) 의 과제라고 해야 할 것같다.

왜냐하면 글이나 말은 무엇이라고 표현하든지간에 편집방향이나 태도를 보면 '정도' 를 가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을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언론이란 사실 보도에 충실하고 편집이나 논평에 있어 공평 (公平) 과 공정 (公正) 을 기하는 것이 '정도' 며, 그것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치부해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그렇게만 되는 것도 아닌 것이 언론이 직면한 상황임을 외면할 길은 없을 것같다.

가령 사실 보도의 경우만 하더라도 '사실' 을 보도했다는 것만으로 이른바 '정도' 의 조건이 반드시 충족되지는 않는다.

더구나 사실과 진실에 괴리 (乖離)가 있을 때는 사실 보도가 정도가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진실은 사실일 수 있지만 사실은 진실일 수 없다' 는 것은 언론의 영원한 명제 (命題) 임을 망각해선 안되리라고 믿는다.

이런 뜻에서 언론은 사실 보도 못지 않게 진실 보도 내지 진실 추구에 비중을 두어야 할 것이다.

'공평' 과 '공정' 한 보도 내지 편집 역시 마찬가지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정치행위에 있어 어떤 주장일 경우는 공평하고 공정하게 다뤄야 하겠지만 '진실' 이라는 잣대로 사실보도를 하는 경우엔 오로지 '진실' 그 자체가 공평과 공정을 가름한다고 보아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진실 보도 또는 진실 추구라는 언론 본연의 책무와 관련해서 말한다면 언론이란 발표된 어떤 사실에만 안존해선 그 책무를 다할 수 없는 법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의 언론은 너무나 많은 과제들을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순열은 '위' 에서 비롯된 나라의 네가지 병 가운데 둘째로 '사 (私)' 를 꼽고 있다.

여기서 '사' 는 '공 (公)' 과 반대되는 개념이기도 하지만 정치의 사당화 (私黨化) 로 말미암은 병을 일컫는 것이다.

셋째는 '방 (放)' .여기서 '방' 은 '멋대로' . '엉터리' .무절제.무법 (無法) 의 뜻이다.

넷째는 '사 (奢)' .여기서 '사' 는 사치 (奢侈) 하고 '오만하고' '쇼' 한다는 뜻을 지닌다.

이런 네가지 병은 부패와 악으로 현재화하게 마련인데 이것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나라의 명운 (命運) 이 좌우된다고 일컬어진다.

지난 날의 역사를 살펴볼 때 일반적으로 매스컴의 '악' 에 대한 대처는 세가지였다고 분석될 수 있을 것같다. 첫째는 '악' 과 손잡고 협력하는 경우, 둘째는 '악' 에 굴복해 수동적으로 협력하면서도 그렇지 않은 것처럼 위선하는 경우, 그리고 셋째는 '악' 을 거부하고 철저히 반대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지난 날의 일부 언론이 어떠했든간에 오늘의 시대상황에서 언론은 거듭나야 하고, 그런 뜻에서 '위' 와 '악' 의 실체를 국민에게 올바로 알리고 근본 (根本) 을 바로잡는 일이야말로 언론의 '정도' 임을 새삼 인식해야 할줄 안다.

이규행 <본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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