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 시평

참여정부가 성공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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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지난 4.15 총선에서 우리 국민은 안정적 국정운영을 위해 여당에 과반수 의석을 몰아주었다. 그러나 참여정부 임기의 3분의 1이 지나고 있는 지금 수도 이전, 이라크 파병,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국회상임위 배정, 노동계 하투, 청와대와 여당 간의 갈등을 둘러싸고 국정은 여전히 혼란상태다. 민생경제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고 수출을 제외한 모든 경제지표가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고유가, 중국의 긴축정책, 미국 금리 인상 등으로 우리 경제의 마지막 보루인 수출마저 흔들림에 따라 하반기 경제전망 또한 밝지 않다.

*** 탄핵기각 후 오만함에 실망

지난 1년반 동안 온갖 경기부양책을 다 써보았지만 투자와 소비가 살아나지 않고 있고, 이제 더 이상 사용할 정책수단도 없어 보인다. 정부가 재벌총수들을 청와대로 불러들이고 개발독재시대를 연상시키는 투자전략보고회를 열고 투자를 독려하고 있지만 고육지책으로 보일 뿐이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면 이제 정부도 문제의 근본원인이 무엇인지 심각하게 자문할 때가 되었다. 모든 경제전문가들이 현 경제난국의 원인은 수출호조세가 투자와 소비로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며 이구동성으로 결국 투자가 관건이라 하고 정부도 이를 인정한다. 그러나 이것은 표면적인 이유일 뿐이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왜 온갖 경기부양책과 대통령의 투자심리 살리기 노력에도 불구하고 투자가 살아나지 않는가, 정확히 말하면 왜 국내투자가 살아나지 않는가를 물어야 한다. 왜냐하면 남의 나라 일자리 만들어주는 해외투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우리 기업인들과 주한 외국기업 임원들과의 토론에서 얻은 결론은 역시 참여정부에 대한 불안감과 정부 정책의 불확실성이 근본원인인 것 같다. 정부는 이러한 진단을 믿고 싶지 않겠지만 이것은 현실이고 이 근본적인 불안을 해소하지 않고는 이 난관을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참여정부와 그 정책에 대한 불안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첫째는 참여정부의 국정운영 방향에 있는 것 같다. 탄핵정국 종결 후 상생과 타협을 바탕으로 경제중심의 국정운영에로의 방향전환을 기대했던 기업들이 탄핵안 기각 후 청와대와 여당이 보여준 무반성과 오만함에 실망을 금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겉으로는 경제살리기, 일자리 창출, 국가경쟁력 제고를 외치지만 국가예산 제약을 무시한 채 실질적인 천도와 나눠먹기식 지역 균형발전에 정권의 명운을 걸겠다는 이 정부의 전도된 국정 우선순위에 걱정이 앞서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태도는 이 정부의 통치철학이 출범 초기에 주장했던 기득권 세력과 비기득권 세력 간의 세력균형의 연장선상에 여전히 있음을 은연 중 드러낸 일례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임기 중에 모든 기존질서를 바꾸어 놓겠다는 결연한 의지 앞에서 열심히 일하고 위험을 무릅쓰며 투자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날 수 없는 것이다.

둘째, 현 정부의 인사정책이 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경제를 제대로 운영하기 위해선 시장의 작동원리를 잘 알아야 한다. 우리 사회에선 시장원리를 주장하면 수구로 몰리지만 시장원리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자본주의 국가이든 사회주의 국가이든 시장이 있는 한 작동하게 되는 냉엄한 법칙인 것이다. 그런데 현 정부의 핵심정책 담당자들 중엔 시장원리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시장원리를 누구보다 체험적으로 잘 아는 유능한 관료들이 있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자리 보전이 우선이다.

*** 시장이 믿을 만한 인물 등용을

대통령 주변의 권력핵심 측근들은 시장에 대한 불신을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상황에선 시장원리에 충실한 일관된 경제정책이 나올 수 없다. 항상 임기응변과 불협화음이 있을 수밖에 없고, 이것이 기업을 불안하게 하는 것이다. 편협한 코드중심 인사를 지양하고 시장이 신뢰할 수 있는 개혁적이고 전문성 있는 인재의 폭넓은 등용없이 경제회복은 불가능할 것이다.

참여정부가 우리 사회의 고착된 기존질서를 무너뜨리고 지역간 계층간 균형발전을 이루겠다면 그것은 가치관의 문제이고 선택은 자유다. 그러나 자신들의 임기 내에 그 모든 것을 이루겠다는 지나친 집착은 우리 경제의 희생을 수반할 수 있고, 결국 자신들도 실패할 수 있음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나성린 한양대 교수.경제학 한국재정.공공경제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