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과학 칼럼

인간과 로봇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45면

하루에도 수천 대씩 자동차가 쏟아져 나오는 울산 공장에서 가장 활약상이 두드러지는 ‘노동자’가 있다. 그는 시작을 알리는 신호음과 함께 정해진 작업을 일사불란하게 처리해 내는 로봇이다.

우리나라에 6만 대 이상 설치된 이 산업용 로봇들은 용접가스가 자욱한 공장 안에서 주어진 일을 한 치의 오차 없이 쉬지도 않고 수행하는 최고의 일꾼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되었다.

나는 이들이 작업하는 광경을 지켜보다 보면 절로 흐뭇해지곤 한다. 하지만 예전에 그 자리를 차지했었던 인간 노동자들의 모습과 겹쳐지면서 오묘한 전율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 이때만큼은 로봇들이 단순한 기계가 아닌 우리 인간의 아류처럼 느껴지곤 한다.

혹자는 후자의 경우만을 상정하고, 이들 로봇이 인간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고 강변하지만 실제로 그렇지만은 않다. 현대 산업에서 이들이 없었다면 품질과 생산성을 도저히 맞추지 못하게 돼 생산 경쟁력을 상실하게 되는 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오히려 인간들은 이들이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일을 묵묵히 도맡아 할 때 좀 더 인간적이고 지능적인 일에 몰두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2003년 지구로 귀환하던 미국의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가 폭발해 그 안에 타고 있던 우주인 7명이 사망하는 끔찍한 사고가 일어났다. 미국의 우주탐험 정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이 사건은 결국 이런 위험한 일에는 인간 대신 로봇의 활용이 필수적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결과 미 항공우주국(NASA)이 개발하고 있는 대표적 로봇이 인간을 닮은 ‘로보넛’이다.

‘로봇 우주비행사(robot+astronaut)’를 뜻하는 600만 달러짜리 로봇을 개발하기로 한 것은 위험한 우주 유영(游泳·우주선 밖 우주공간에서 하는 활동)의 위험성으로부터 우주비행사를 해방시키기 위해서다. 우주 유영을 해야 하는 비상사태가 생긴다면, 우주인은 나가기 전 최소한 2~3시간은 가만히 앉아 100% 산소를 들이마셔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주로 나가는 즉시 체액이 기화되면서 죽게 되기 때문이다.

우주인을 내보내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이 로봇을 안전한 지구에서 원격으로 조종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는 게 NASA의 생각이다.

우주선 중량의 3분의 1 이상이 우주인의 생존을 위한 물·산소·식량이나, 숨을 쉬지 않는 우주인인 ‘로보넛’에게는 이런 것들이 모두 필요 없게 된다. 그만큼 우주선의 중량이 감소하게 되고 또한 우주인의 훈련과 생존·안전보장을 위해 드는 비용도 불필요해진다. 천문학적인 비용 때문에 주춤했던 우주 개발이 다시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되는 이유다.

비단 이 한 가지 사례뿐만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여러 상황들을 살펴보면 로봇이 가장 잘 활약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란 결국, 인간에게는 최악의 환경인 곳이다. 존엄한 인간의 생명을 대신할 수 있는 일이라면 더더욱 알맞다.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생명을 구하러 불타는 건물 속으로 달려 들어가는 일도, 혹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지뢰를 제거하기 위해 지뢰밭으로 묵묵히 들어가는 일도 로봇에게는 명령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인간과 로봇의 절묘한 공존은 어쩌면 이렇게 시작되지 않을까?

김문상 KIST 프런티어 지능로봇 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