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경제] 원화 가치 왜 많이 떨어지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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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최근 상황을 이해하려면 우리나라 외환시장과 주식시장이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최근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을 살펴보면 주가와 원화 가치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날이 많습니다. 주가가 오르는 날에는 원화 가치가 함께 상승하고, 주가가 떨어지면 원화 값도 하락하는 때가 많다는 겁니다. 이는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에서 외국인투자자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입니다. 외국인들은 국내 거래소에 상장된 주식 총액의 28%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주식을 대량으로 팔아치우면 주가가 떨어지기 쉽습니다. 외국인들은 지난해에만 412억 달러어치의 국내 주식을 처분했습니다. 이들이 주식 판 돈을 도로 가져가려면 원화를 달러로 바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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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시장은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적용되는 곳입니다. 매물로 나온 달러가 많으면 달러를 싼값에 살 수 있으니 원화 가치가 오릅니다. 반대로 시장에 나온 달러가 부족하면 달러 가치가 상승하고 원화 값은 떨어집니다. 외국인들이 지난해부터 주식을 팔고 달러로 바꿔 나가려 했기 때문에 주가가 떨어졌고, 원화 가치도 하락한 것입니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서 주식을 파는 것은 세계 금융위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가 확산되면서 이들도 막대한 손실을 보았고, 세계 각국에 투자한 돈을 회수하기 시작했습니다. 위험한 곳에 있는 자산을 팔아 안전한 곳으로 옮기려 한 것입니다. 해외 투자자들은 선진국보다는 한국 등 신흥 시장의 위험이 더 큰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국 경제는 수출에 크게 의존하고 있고, 세계경제가 침체되면 해외 수요가 줄어 수출이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이런 모든 상황이 외국인투자자 때문만은 아닙니다. 외국인이 주식을 팔고 환전하려 할 때 충분한 달러가 시장에 나왔다면 원화 가치가 그렇게 떨어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64억1000만 달러의 경상수지 적자를 냈습니다. 외환위기가 시작됐던 97년 이후 처음입니다. 국제유가가 크게 오른 탓에 석유와 가스를 포함한 에너지 수입 금액이 2007년 828억 달러에서 지난해 1236억 달러로 크게 늘었습니다. 또 우리나라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가면서 쓴 돈이 국내로 온 외국인 관광객이 쓴 돈보다 80억 달러가 더 많았습니다. 우리가 번 것보다 더 많은 달러를 쓴 것입니다.

더구나 지난해엔 국내 은행들까지 외국 금융회사에서 빌려온 돈을 갚기 위해 달러를 구해야 하는 형편이었습니다. 우리 은행들은 부동산 경기가 좋을 때 외국에서 돈을 빌려다 국내에서 대출을 했습니다. 하지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외국 금융회사들이 돈을 갚으라고 요구하자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들은 정부와 한국은행이 꿔준 달러로 빚을 갚았습니다.

국내 외환시장의 규모가 크지 않은 것도 문제입니다. 현재 서울 외환시장의 하루 평균 거래량은 30억~40억 달러 수준입니다. 규모가 작다 보니 조금만 주문이 나와도 원화 가치가 크게 움직입니다. 이런 시장에선 단기간 거래로 차익을 보려는 투기세력이 개입하기 좋습니다. 실제 달러가 필요하지도 않는데 계속 사자 주문을 낸 뒤 달러 값이 오르면 이를 처분해 이익을 보려는 겁니다.

이럴 때 정부가 외환보유액을 풀어 시장에 개입하기도 합니다. 달러를 시장에 풀어 원화가치가 과도하게 떨어지는 것을 막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2000억 달러가 넘는 외환보유액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한다 해서 원화 가치를 원하는 대로 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경제가 나빠질 것으로 전망한 외국 투자자들이 우리나라를 떠나려 하면 정부가 아무리 개입해도 외환보유액만 날릴 공산이 큽니다. 이 때문에 시장 개입은 꼭 필요한 경우로 한정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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