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뉴냐 올드냐, 판 바꾸기 기로에 선 민주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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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민주당의 ‘뉴(new) 민주당 비전(vision)위원회’가 6개월 작업 끝에 ‘뉴 민주당 선언’ 초안을 만들었다. 대선과 총선에서 참패하자 당은 정신과 노선을 새롭게 정비하기 위해 ‘뉴 비전’ 작업을 시작했다. 새 선언이 확정되면 정강 정책도 새로운 옷을 입게 된다. 당의 현 슬로건은 ‘중산층과 서민의 벗’이다. 당은 이것부터 ‘모두를 위한 번영’ 같은 것으로 바꾸는 걸 논의 중이다.

낡은 틀을 깨고 거듭나겠다는 민주당의 판 바꾸기 시도가 성공하길 기원한다. 변신의 방향도 일단 시대흐름에 맞다고 평가된다. 원칙적으로 보면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다는 것이 틀린 게 아니다. 그러나 특히 노무현 대통령 정권 동안 이런 슬로건은 사회를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로 양분하고 갈등과 대립을 자극했다. 2대8이라는 양분(兩分) 공식도 나왔고, 종합부동산세라는 ‘부자 징벌적’ 세금폭탄도 퍼부어졌다. 정권 안팎에선 강남·서울대 출신에 대한 반감이 공공연히 드러났다.

민주당은 2와8 중에서 8을 잡으면 될 걸로 믿었지만 오산이었다. 부자와 대기업이 소비를 하고 투자를 해야 전체 파이가 커지는 법이다. 그들이 집을 팔지 않고 지갑을 열지 않고 투자를 머뭇거리면서 8도 고통을 겪었다. 정권교체는 무엇보다 경제를 살리라는 아우성이었다. 늦었지만 민주당은 자신들의 입지가 지금 얼마나 좁아 들고 있는지 인식하는 것 같다.

비전위원회 위원장과 당 민주정책연구원의 원장을 맡고 있는 김효석 의원은 어제 “민주당이 분배에만 관심 있다는 이미지를 바꾸겠으며, 부자를 적대시하는 정당이라는 이미지도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민주당은 모두를 위한, 부자와 대기업을 적대시하지 않는 서민과 중산층 중심으로 간다”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다짐이 과연 제대로 지켜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당은 뉴 비전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던 지난 연말에도 편 가르기라는 포퓰리즘 행태를 보였다. 금산분리 완화는 재벌은행법, 미디어 관련법은 재벌언론법이라고 몰아붙였다. 최근 영국의 야당인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 당수는 의회 연설에서 ‘내 탓이오’(mea culpa·내 잘못이란 뜻의 라틴어)를 선언했다. 그는 “우리 보수당도 기업, 은행의 부채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까지 간 데 대한 사전 경고를 제대로 못했다. 경제성장이 지속될 거라고 안이하게 전망했다”고 사과했다. 한국의 야당에서도 이런 소리가 나와야 한다. 반성과 개혁과 실천이 없으면 영원히 ‘올드(old) 민주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