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조세포탈죄 인정의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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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김현철 (金賢哲) 씨 유죄판결은 전두환 (全斗煥).노태우 (盧泰愚) 두 전직대통령 비자금 사건에 이어 권력형 비리에 대한 사법부의 엄정한 처벌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더구나 그가 현직대통령의 아들이라는 점에서 법 앞에 성역은 있을 수 없으며, 권력의 핵심인물일지라도 법을 어기면 처벌받는다는 평범한 법치의 원리가 재삼 확인됐다.

판결내용중 특히 주목되는 것은 재판부가 그동안 정치권의 관행으로 묵인돼오다시피한 음성적인 정치자금에 대해 조세포탈죄를 인정했다는 점이다.

재판부는 "정치자금법상 면세대상을 제외하고는 정치자금으로 사용할 목적으로 취득한 금원은 실제 정치활동에 소비했다고 하더라도 과세를 면할 수 없다" 고 밝혔다.

사법사상 처음으로 정치자금의 은닉행위를 처벌한 획기적인 판결로서 향후 정치권에 미치는 영향이 자못 크리라고 짐작된다.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이 현재 정치권의 쟁점이 되고 있는 김대중 (金大中) 국민회의 총재 비자금 의혹에 대한 영향이다.

의혹을 받고 있는 金총재의 정치자금이 김현철씨의 비자금과 비슷한 성격을 갖는 것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신한국당의 폭로대로 金총재의 비자금이 존재하고 그것을 측근인물을 통해 가.차명계좌로 관리해 왔다면 조세포탈죄를 적용한 사법처리가 가능해지므로 그동안 수사착수에 소극적이던 검찰이 어떤 태도를 취하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번 판결은 또 국회의원의 포괄적 뇌물죄 인정에 이어 부정부패 척결을 위한 엄격한 잣대를 제시함으로써 정치자금의 투명성을 강조한 의미가 있다.

당연히 정치자금 수수관행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그동안 우리 정치인들은 고비용 정치구조 아래서 후원회나 중앙당의 지원 등 정상적인 자금 외에 기업 등에서 음성적인 정치자금을 조달해 사용하고 문제가 되면 떡값이라는 등의 이유로 발을 빼왔던 것이 사실이다.

정치개혁법안을 마련중인 정치권은 돈정치에 대한 국민적 염증과 갈수록 엄격해지는 사법 기준을 주목하고 정치문화의 개선에 박차를 가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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