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하시모토총리 한때 사임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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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지난달 10일 자민당총재에 무투표로 재선될 때만 해도 일본개혁의 전도사로 막강한 파워를 과시하던 하시모토 류타로 (橋本龍太郎) 일본총리가 휘청거리고 있다.

불과 한달만이다.

슬슬 후임총리 이야기까지 나돌 정도로 궁지에 몰려있지만 그가 빠져나올 방법도 마땅찮다.

이달 들어 각종 여론조사에서 하시모토 정권 지지도는 일제히 50% 이하로 떨어졌다.

9일에는 '하시모토 사임' 소문까지 나돌면서 주가와 환율이 출렁거렸다.

상황이 꼬이기 시작한 것은 지난달 21년 전 록히드사건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사토 고코 (佐藤孝行) 의원을 총무청장관에 앉히면서부터. '전과자 장관' 에 대한 국민여론의 악화는 사토장관 퇴임과 총리의 대국민 사죄에도 불구하고 쉽게 풀리지 않고 있다.

고만고만한 야당에 자민당 의석이 반수를 넘어서면서 자만한 하시모토의 오산이 무리수를 부른 것이다.

하시모토의 입지가 좁아지면서 개혁의 속도도 눈에 띄게 떨어지고 있다.

행정개혁의 핵심인 우정3사업 (우편저금.간이보험.우편) 민영화계획은 백지화됐다.

또 소비세율 인상에 따른 경기후퇴는 재정개혁의 발목을 잡고 있다.

당장 내년 참의원 선거를 치르려면 자민당 표밭인 우정3사업에 손을 댈 수 없다는 관계의원들의 반발도 집요하다.

경기회복을 위해 정부투자를 늘리고 각종 세법을 완화해야 한다는 압력은 '세수확대 - 긴축재정' 이란 재정개혁의 뿌리를 뒤흔드는 상황이다.

당내조직이 약한 하시모토에게 '행정개혁이냐 선거냐' 라는 양자선택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하시모토 총리의 답답함은 마땅히 기댈 데가 없다는 데 있다.

보수연합파와 3당연립파의 절묘한 균형 위에서 집권에 성공했지만 이미 나카소네 야스히로 (中曾根康弘) 전총리와 가지야마 세이로쿠 (梶山靜六) 전관방장관등 보수연합파는 등을 돌려버렸다.

다케시타 노보루 (竹下登) 전총리등 원로들도 인기가 하락하는 하시모토와 일정한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조직.자금 대신 대중적 인기를 앞세운 그의 지도력이 한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정국이 불투명해지자 하시모토의 낙마에 대비한 후임총리설도 퍼지고 있다.

가토 고이치 (加藤紘一) 자민당 간사장과 오부치 게이조 (小淵惠三) 외무장관이 소문의 주인공. 국회의사당 주변에는 56세인 가토 간사장이 징검다리 승계를 위해 최대파벌을 이끄는 오부치에게 차기총리 자리를 양보하는 밀약을 맺었다는 이야기가 벌써 파다하다.

도쿄 = 이철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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